[청렴기고] 이순신 장군의 『오동나무 일화

함양군민신문 | 입력 : 2019/02/20 [16:30]

 

 

▲     ©함양군민신문

 배현준 함양군청렴기획단 간사/함양군청 감사담당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영에 속해 있는 ‘발포’지역에서 만호라는 벼슬을 하고 있을 때였다. 직속상관인 전라좌수사 ‘성박’이 딸을 시집보내는데 거문고를 만들어 주려한다며 이순신이 있는 만호 공관의 오동나무를 베어 오라고 하였다.

 

이 말을 전해들은 이순신은 나라가 위급한 시기에 전함을 만들어도 모자랄 판에 풍류를 즐기기 위한 거문고를 만들려고 오동나무를 베어오라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여 “관아의 오동나무는 나라의 것이다”라며 거절했고, 이 같은 원칙을 지킨 청렴한 결정은 오히려 파직으로 돌아왔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대학자 유성룡이 찾아와 이율곡을 만나 사정 이야기해 보라고 하였으나 이순신은 그가 관직에 있는 동안에는 만나지 않는 것이 옳은 것 같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이 현재까지 여전히 빛나는 이유는 명량해전 등 세계사에 유래가 없는 연전연승의 기록들뿐만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서도 원칙을 지키며 청렴함을 유지했기에 가능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순신 장군은 굳건한 리더십과 충성심에 청렴한 성품까지 겸비하여 후손들의 가슴속에 가장 위대한 역사의 위인 중 한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공직에 몸담은 이들에게 많은 교훈을 주는 인물이다.

 

우리 함양군의 청렴도 현실은 임진왜란 당시 위기에 빠진 조선의 상황과 비유된다. 군은 최근 몇 년 동안 공공기관 청렴도 평가에서 연이어 최하위를 기록하였고 특히 외부청렴도 부분에서 최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임진왜란 초기 계속해서 패하며 총체적 난국에 빠졌던 조선의 상황처럼 위기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기 어려운 것이 지금의 함양군 현실이다.

 

이순신 장군의 오동나무 사건 일화는 현재의 함양군에 시사 하는 점이 적지 않다. 본인이 불리한 처지에 있을 때에도 신변에 대한 부당한 상급자의 청탁을 마다하며 파직과 백의종군이라는 시련에도 결코 자신의 청렴의지를 굴복하지 않았다. 공직생활을 하면서 특수한 상황과 주변의 관계를 고려할 때 지인의 청탁이나 눈앞의 이득을 이순신 장군처럼 단숨에 끊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리고 아무리 적은 재산(예산)이라 할지라도 공직자는 탐을 내어서는 안 되며 사소한 것이라도 사유화해서는 부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이다. 부패는 작은 부패에서 시작하여 언제나 크나큰 부패를 유발하게 되어 있다. “나 하나쯤이야!” 그리고 “이 사소한 것쯤이야!” 하는 생각에서 비롯된 일상적 부패 원인으로 공직자의 신분을 잃게 되는 사례를 주변에서 많이 지켜봐 왔을 것이다.  
    
청렴도는 청렴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이자 상징적 이미지이기 때문에 평가점수가 낮다는 사실은 지역의 브랜드 가치와 대외 신인도 하락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연속적인 청렴도 최하위 성적표는 행정에 대한 불신까지 초래하여 문제만 발생하면 전혀 관계없는 일도 청렴도와 연관 지어 싸잡아 비판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우리 함양군이 청렴도 문제를 빨리 풀어야 할 숙제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직자로서 청렴은 기본이 되는 덕목으로써 선택이 아닌 의무이다. 청렴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공직자와 조직은 국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고 추진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관아의 오동나무 한 그루도 사사로이 베어버릴 수 없다’는 이순신 장군의 말을 가슴에 새겨 우리 함양군의 공직자들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원칙을 지키며 청렴하고 투명한 행정 실천에 최선의 노력을 다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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