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비아의 와인’이냐 ‘힘을 솟게 하는 음료’냐 커피의 실체는?

함양군민신문 | 입력 : 2018/04/16 [11:33]

 

▲ 커피의 시원지로 꼽히는 에티오피아 카파 지역에 있는 봉이(Bongo) 마을에서 오로모족 주민들이 커피 열매를 햇볕에 말리고 있다. 출처=커피비평가협회     © 함양군민신문

 

“피부 맑게 하고 습한 기운 없애 주며 신체에 좋은 향기 제공”
17세기 영국.프랑스.독일 탐험가들이 중동 커피문화 유럽 전해

 

커피를 언급한 최초의 기록은 기원후 900년쯤 페르시아에서 나온다. 라제스(Rhazes, 865~925)라는 의학자가 “커피는 뜨거우면서도 몸을 마르게 하지만 위장에 매우 유익하다(Bunchum is hot and dry and very good for the stomach.)"는 기록을 남겼다. 여기서 관심을 끄는 대목은 라제스가 커피를 ‘번컴(Bunchum; 분첨이라고도 표기)’이라고 지칭했다는 사실이다. 당시 라제스의 권위는 대단했다. 그는 <천연두와 홍역에 관한 고찰>이라는 책을 집필했는데, 천연두와 홍역을 유발하는 바이러스가 각각 다르다는 사실을 밝혀냈으며, 페스트균에 관한 논문도 썼다. 그가 얼마나 왕성하게 연구를 했는지 제자들이 그가 숨진 뒤 자료를 모아 엮은 것이 <의학보고>라는 의학백과사전이 될 정도였다. 의학보고는 그리스, 인도, 아라비아 등지의 의학지식이 총망라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라제스가 세상을 떠난 지 반세기가 지날 때쯤 이슬람권에서 이븐 시나(Avicenna, 980~1037)라고 하는 걸출한 의학자이자 철학자가 나온다. 그가 쓴 ‘의학전범(Canon medicinae)’은 당시 알려진 의학정보를 집대성한 것으로 17세기까지 유럽 의학의 기본서로 활용됐다.


이븐 시나는 커피의 의학적 성질과 활용에 대해 서술했는데, 커피를 라제스처럼 ‘번컴’이라고 적었다. 그는 커피 생두에 대해 “레몬 같은 밝은 빛을 띠는 생두가 향기가 좋고 품질이 좋은 것이다. 흰빛이 돌며 탁한 것은 좋지 않다. 커피는 몸을 뜨겁게 하고 건조하게 만든다. 커피를 마시면 몸이 차가워진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커피는 피부를 맑게 하고 몸 속의 습한 기운을 없애 주며 신체에 좋은 향기를 제공한다”고 적었다.

 

▲ 영국의 화가 존 프레더릭 루이스(John Frederick Lewis)가 1857년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오스만 사람들의 숙소에 묵으면서 그린 커피를 나르는 여인(The Coffee Bearer). 당시 유럽인들은 커피를 ‘아라비아의 와인’이라며 무슬림들만의 음료라고 소개했다.     © 함양군민신문


라제스와 이븐 시나는 모두 커피를 ‘번컴’이라고 불렀는데, 지구상 어디를 뒤져봐도 커피를 이렇게 부르는 나라는 에티오피아 밖에 없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지금도 지역에 따라 커피를 번컴, ‘분나(Bunna)’, ‘부나(Buna)’, ‘분(Bunn)’이라고 부른다. 커피는 명칭이 기원지인 에티오피아의 카파(Kaffa)라는 지명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이 있지만, 에티오피아인들은 “사실이 아니다”고 손사래를 친다.


그렇다면, 오늘날 왜 분나나 번컴이 아니라 커피로 불리는 것일까? 그것은 커피를 유럽으로 전함으로써 세상에 널리 퍼트린 세력이 중동이나 오스만제국 등 이슬람권의 무슬림이기 때문이다. 터키나 이집트, 예멘을 통해 17세기 커피를 전해 받은 이탈리아나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커피가 당연히 아라비아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았다. 유럽인들은 처음에 커피나무를 보고 아라비아 재스민이라고 불렀다. 꽃 모양이 재스민과 흡사했기 때문이다.


커피라는 명칭은 앞서 언급한 에티오피아의 지명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아랍어 '카웨(Kaweh)'에서 비롯됐다는 견해가 있다. '카웨'는 '힘을 솟게 하는’이라는 뜻이다. 무슬림들이 커피를 마시고 각성효과를 경험해 이렇게 이름을 붙였다는 주장이다. 아랍어에는 카웨와 비슷하게 들리는 ‘카와(qahwa)’라는 말이 있는데, 그러나 이것은 술(wine)을 의미한다. 유럽인들은 커피를 ‘아라비아의 와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에 대해선 종교적으로 술을 마시는 것이 금지된 이슬람교도들이 커피를 즐겨 마시는 모습이 그리스도교를 믿는 유럽인들에게는 술에 대한 욕구를 대신하려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라는 관측도 있다. 


또 힘이나 강력함을 뜻하는 ‘쿠와(quwwa)’라는 단어도 있다. 기운을 돋게 한다는 의미에서 역시 커피를 연상케 하는 단어이다. 이런 유사한 발음의 단어들 때문에 커피의 명칭에 대한 기원을 둘러싸고 적잖은 혼란이 빚어졌다.

 

▲ 터키 이스탄불의 카페 거리에서 커피와 차를 배달해주는 ‘거리의 바리스타’가 즐거운 표정으로 음료를 나르고 있다. 16세기 오스만투르크 제국시절 커피는 터키에서 종교적 한계를 벗고 본격적으로 대중화 했다. 출처=커피비평가협회     © 함양군민신문


에티오피아에서 예멘,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로 전해진 커피는 수피교도들에 의해 길게는 1000여년간 중동 전역으로 퍼지는 과정에서 이슬람식 명칭으로 굳어지게 된다. 16세기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등장과 함께 커피는 신을 만나기 위해서라거나 금욕주의를 실천하기 위해서, 또는 밤새 기도하기 위해서 라는 둥 종교적 이유에서 벗어나 빠르게 대중화 했다. 사람들이 이 곳 저 곳에서 모여 커피를 즐겨 마시면서 고정적으로 커피를 파는 장소가 본격적으로 생겨났는데, 이 시기 사람들은 그곳을 '카베(kahve)’라고 불렀다.


17세기에 들어서면 영국, 프랑스, 독일의 탐험가들이 잇따라 중동을 여행하면서 커피 문화를 유럽에 전한다. 커피를 팔고 마시는 카베의 문화가 유럽인들 사이에서는 ‘카페(cafe)’로 불렸다. 1650년경 커피가 카웨 또는 카베라는 명칭으로 영국에 전해지는데, 헨리 블런트(sir H. Blount) 경이 처음으로 이를 ‘커피(Coffee)’라고 부르고 표기했다고 전해진다.


기록만 보면, 에티오피아는 중동보다 한 참 뒤인 11세기에 접어들어서야 언급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티오피아가 커피의 시원지로 꼽히는 것은 과학적 물증 덕분이다. 20세기 탄생한 유전학이 DNA 분석을 통해 커피나무가 에티오피아에서부터 퍼져 나간 사실을 밝혀냈다.


커피나무는 인류보다 훨씬 먼저 생명력을 얻어 자라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에티오피아는 험준한 산악지대가 많아 아직까지도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적지 않다. 식물학자들이 새로운 종자를 찾기 위해 몰려드는 곳이 에티오피아이고, 3000여종의 종자가 그 유래를 에티오피아에 두고 있다. 인류가 재배하는 작물의 기원지로는 세계적으로 7~8곳이 꼽히지만, 에티오피아는 그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종자의 보고(寶庫)다.


식물학자나 식량문제 해결을 위한 종자학자들이 작물의 기원지를 찾는 이유는 작물의 기원지일수록 품종이 다양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된 커피가 세계 각지로 퍼지면서, 커피 품종의 다양성은 심각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만 품종개량이 이루어진 탓이다. 품종의 획일화는 ‘종의 보존’이라는 측면에서는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야생 품종을 발견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고, 이것이 바로 커피의 기원지인 에티오피아가 지니는 진정한 가치다.

 

▲     © 함양군민신문

# 박영순
커피비평가협회(CCA) 협회장
경민대 평생교육원 바리스타과정 전담교수
前포커스신문 편집국장
인터넷신문 커피데일리 발행인 및 편집인
미국커피테이스터 감독관
이탈리아 에스프레소 스페셜리스트
저서 <커피인문학:커피는세상을어떻게유혹했는가?>(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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