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인문학(2)

칼디, 커피열매로 회춘(回春)하는 염소를 목격하다!

함양군민신문 | 입력 : 2018/04/02 [14:21]

▲ 염소가 커피열매를 먹고 힘을 내는 모습을 간파한 칼디는 목동이라기보다는 경험이 많은 노회한 염소지기였을 가능성이 높다.     © 함양군민신문

 

 “밤새 졸지 않고 기도 올리거나 젊을 때처럼 힘 솟구쳐”
카페인.항산화물질 다량 함유 각성효과.에너지 증폭 효과

 

커피의 기원과 관련해 에티오피아와 예멘은 각각 ‘지분’을 주장할 만하다. 에티오피아는 커피의 시원지이고, 예멘은 인류 최초로 커피를 재배하기 시작한 곳이다.

 

그러나 두 나라는 기원전 10세기경 ‘시바’라는 한 왕국이었으며, 종교문제로 양 진영이 몇 차례 전쟁을 치르다가 기원후 6세기에야 명확하게 갈라섰다.

 

따라서 6세기 이전을 언급하면서, 커피의 기원지가 에티오피아냐 예멘이냐를 따지는 것은 그다지의미가 없다. 커피의 기원설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염소지기 칼디(Kaldi)의 전설’이다.

 

칼디가 에티오피아 사람이었는지, 예멘 사람이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리고 그 시기도 말하는 사람에 따라 기원전 2~3세기라 하기도 하고 기원후 2~3세기라고도 한다.

 

이런 사정 때문에 칼디의 전설은 ‘아주 먼 옛날, 칼디라는 목동이 살고 있었다’는 식으로 시작된다.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목동 칼디는 늘 그랬던 것처럼 그날도 염소를 고산 계곡에 풀어놓고 있었다. 그런데 늙은 염소가 힘이 솟구치는 듯 활발히 움직이며 젊은 염소들을 제압하는 게 보였다.

 

칼디가 가만히 살펴보니, 늙은 염소가 체리처럼 빨갛게 생긴 열매를 먹기만 하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었다. 그 염소는 우리로 돌아와서도 좀처럼 잠들지 못하고 왕성한 움직임을 보였다.

 

시간이 갈수록 이 열매를 먹는 염소들이 늘어났다. 염소들은 빨간 열매를 자주 먹는 것은 아니었지만, 칼디의 눈에는 힘이 필요할 때 이 열매를 이용하는 것처럼 보였다.

 

칼디는 빨간 열매의 정체가 궁금하다 못해 열매가 달린 가지를 꺾어 마을에 사는 지혜로운 사람에게 가지고 가 사정을 이야기했다.

 

칼디는 “어르신! 힘이 없는 염소가 이 열매만 먹기만 하면 기운차게 날뜁니다. 왜 그런 거지요”라고 물었다. 지혜로운 자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거기에 두고 가거라”고 답했다.

 

며칠이 지나 칼디가 지혜로운 자를 다시 찾아갔다.

 

그는 칼디를 보자마자 버선발로 뛰어나와 칼디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고는 “열매를 더 갖다 달라”고 애원했다. 지혜로운 자는 그 열매를 먹고 밤새 졸지 않고 기도를 잘 올렸으며, 젊을 때처럼 힘이 솟구치는 듯 했다며 열매에 잔뜩 매료된 표정을 지었다는 내용이다.

 

당시 칼디와 지혜로운 자는 카페인의 존재를 알지 못했지만, 그 효능을 목격하고 경험했던 것이다.

 

커피는 씨앗 뿐 아니라 열매에도 카페인과 항산화물질이 들어 있어 각성효과와 에너지를 끌어올려주는 효과를 낸다.

 

칼디의 전설은 마치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는 우리네 구전동화처럼 들리지만, 오랜 기간커피애호가들 사이에 회자되면서 커피의 기원을 설명하는 정설처럼 굳어졌다.

 

‘칼디’라는 이름을 내건 카페나 원두 상표를 세계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왜 염소가 커피열매를 발견한 동물로 등장했을까? 분명 합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자연 상태에서 커피나무는 8미터에서 10미터까지 자란다.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스미스소니언 국립자연사박물관(Smithsonian's National Museum of Natural History)에 전시된 절벽을 타는 염소의 모형. 커피나무는 자연에서 8~10m까지 자란다. 염소의 발굽은 가파른 절벽이나 높은     ©함양군민신문

 

산지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키보다 조금 더 큰 커피나무에서 손으로 열매를 수확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수확하기 좋도록 가지치기를 해 키를 낮추었기 때문이지, 원래 커피나무의 키는 10미터에 육박한다.

 

높이 달린 커피열매를 칼디의 염소들이 따 먹을 수 있었던 것은 타고난 능력 덕분이다. 염소는 나무를 잘 탄다. 균형을 잘 잡아 깎아 내릴 듯한 절벽도 잘 타고 오른다.

 

염소 수십 마리가 나무에 올라 가지마다 서서 열매나 잎사귀를 먹는 사진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들 사진만을  만든 달력은 커피 애호가들에게는 인기가 있다.

 

인터넷에서 ‘염소가 열리는 나무’를 검색하면, 염소가 나무의 열매처럼 가지 위에 올라 서 있는 사진을 이젠 쉽게 볼 수 있다.

 

사진들은 대체로 모로코의 사하라 사막지대에 사는 염소들이다. 나무는 커피가 아니라 아르간(argan) 나무다. 모로코에서 자생하는 나무로 올리브나무처럼 열매에서 오일을 짜 먹는 것이다.

 

척박하고 건조한 곳에서 잘 자라는데 염소들은 땅이 메말라 물이나 먹이가 부족할 때면 나무에 올라가 잎과 열매를 먹으며 수분과 영양분을 보충한다.

 

▲ 커피 열매는 모양이 체리나 크렌베리와 비슷하다. 겉보기에는 먹음직스럽지만 과육이 거의 없어 과일로서는 매력적이지 못하다. 그러나 카페인 성분이 있어 각성효과로 인류를 매료시켰다.     © 함양군민신문



칼디의 전설은 목 마른 염소가 견디다 못해 커피나무에 올라가 체리를 먹는 장면을 보고 누군가 만들어 낸 이야기일 수 있다.

 

칼디가 에티오피아 사람이었는지는 사실 명료하게 알 수 없다. 예멘에서는 칼디를 예멘의 목동,  지혜로운 자를 이슬람 수도승이라고 주장한다.

 

시기에 대해서도 기록이 없이 입으로 전해지다 보니 구체적으로 말하지 못하고 그저 ‘아주 먼 옛날’이라고만 말한다. 커피애호가들은 칼디가 역사 속의 실존인물이 아니더라도 크게 개의치 않는 눈치다.

 

칼디의 이야기가 우리를 관능적으로 행복하게 만드는 커피의 향미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하지만, 무릎을 탁 치게 하는 재치 있는 스토리 텔링은 커피를 마시는 자리를 더욱 즐겁게 만든다. 

 

‘이야기의 힘(The power of the story)’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향기로운 커피만큼이나 우리의 삶에 소중한 경험이다.

 

칼디의 사연을 오랜 기간 많은 사람들이 전하면서 여러 버전(Version)이 생겼는데, 내용을 파고들면 구성에 적잖게 허점이 발견된다.

 

칼디를 ‘양치기’라고 해놓고는 정작 커피 체리를 먹고 춤추는 동물을 ‘염소’라 말하는 대목이 좀 아쉽다. 또 기원후 2~3세기의 일이라고 말문을 터 놓고는, 칼디가 이슬람 수도승에게 커피를 가져다 주었다고 하는 것은 ‘착각’이다.

 

마호메트(Mahomet)가 이슬람교를 창시한 것이 610년이니, 7세기 이전이라면 이슬람 수도승이 있을 수 없다.  

 

에티오피아가 커피의 시원지라는 사실을 기록으로 남긴 것을 없을까? 그러나 아직 인류가 언제 어디에서 커피를 먹기 시작했는지를 명확하게 밝힐 기록은 나오지 않고 있다.

 

▲     © 함양군민신문

# 박영순
커피비평가협회(CCA) 협회장

경민대 평생교육원 바리스타과정 전담교수

前포커스신문 편집국장

인터넷신문 커피데일리 발행인 및 편집인

미국커피테이스터 감독관

이탈리아 에스프레소 스페셜리스트

저서 <커피인문학:커피는세상을어떻게유혹했는가?>(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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