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원, 억울하게 죽은 소녀 위로한 退魔師였다

구본갑 논설위원 | 입력 : 2017/12/18 [13:45]

 

▲ 최치원. 신라의 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고운(孤雲)·해운(海雲). 중국에서 과거에 오르고 글솜씨를 널리 알렸다. 신라에 돌아와서는 골품제의 영향으로 뜻을 펴지 못하고 저술 활동에 전념하며 만년을 맞았다. 경주 최씨(慶州 崔氏)의 중시조이며, 금돼지의 자손이라는 설화가 전한다.     © 함양군민신문

 

◆시진평 중국주석, 최치원 언급하는 까닭은?
○…2013년 6월 27일 박근혜 전대통령은 중국주석 시진평(習近平)과 정상회담을 갖기 위해 중국땅을 밟았다. 정상회담을 마친후 박 전대통령이 정상회담 결과를 브리핑했다. “우리 두 정상은 양국 경제가 상호 보완성이 크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하고, 이러한 보완성을 더욱 높여, 양국 경제의 안정과 장기 성장에 기여할 수 있도록 포괄적이고 심도 있는 경제협력 체제를 구축하기로 하였습니다. (하략)”

 

▲ 시진평 중국주석.     © 함양군민신문

 

 이날, 시진평 중국주석은 정상회담 자리에서 통일신라시대에 당(唐)으로 유학했던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시구(詩句)를 인용하여 분위기를 살렸다. 시진평이 마이크를 잡고 묵직한 음성으로 최치원의 오언율시(五言律詩) ‘범해(泛海)’를 낭송했다.

 

 범해(泛海)
-고운 최치원


  돛 달아 바다에 배 뛰우니/ 긴 바람 만리에 나아가네/ 뗏목 탔던 한나라 사신 생각나고/불사약 찾던 진나라 아이들도 생각나네/ 해와 달은 허공 밖에 있고/하늘과 땅은 태극 중에 있네/봉래산이 지척에 보이니/나 또 신선을 찾겠네.

 

 시진평이, 굳이 최치원의 시를 선택한 이유는 뭘까? “1천여년전 그대들 조상 최치원 선생이 중국을 위해 헌신을 했듯이 그대(한국)들도 우리 중국과 돈독한 선린 관계를 갖자”는 의미가 아닐까? 시진평은 계속해서 최치원의 시를 인용하며, 한국을 향해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2015년 1월 23일. 시진평은 서울에서 열린 2015년 중국방문의 해 개막식에서 또, 최치원의 시를 또 인용했다. 시진평은 축사에서 “중·한의 문화교류는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다. 한국시인 최치원은 동쪽나라 화개동은 호리병 속의 별천지(東國花開洞 壺中別有天)라는 시로 한반도를 찬양했다”고 말했다.

 

 이어 시진평은 “한국민중은 중국문화를 깊이 이해할 수 있고, 중국민중은 한국문화의 독특한 매력을 좋아한다. 이는 양국이 관광 등 인문교류를 확대하는 데 견고한 토대가 된다“고 밝혔다. 도대체 최치원은 누구길래, 시진평은 중국·한국과의 관계를 언급할 때마다 이 특정인물을 등장시키는 걸까? 최치원은 서기 868년 12세의 나이에 당나라 유학을 떠나 과거에 급제하고 당나라 관료로 지낸다. 김은미 문학박사·김영우 철학박사가 쓴 『고운, 최치원 나루에 서다』 에 게재된 최치원 연표에 따르면, “최치원(당시 23세)은 당나라 희종 건부 6년, 고병이 제도병영 병마도통 관군의 총지휘자가 되어 황소의 토벌에 나설 무렵, 고병의 종사관으로 임명되어 이후 고병의 공문서를 대신 짓는 일을 했다. 이어 희종 중화 1년(서기 881년) 최치원은 ‘토황소격문’을 지어 황소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격문(檄文)이란 적군을 설복하거나 힐책하는 글을 말한다. 격문은 전쟁이나 내란때 군병을 모집하거나 침략의 부당성을 널리 알리는 글로써 많이 이용된다. 글이 힘 있고 선동적인 게 특징이다. 최치원이 쓴 황소에게 보낸 격서(檄黃巢書)는 다음과 같다. 

 

  “광명(廣明) 2년(881) 7월 8일에 제도도통 검교태위(諸道都統檢校太尉) 모(某)는 황소(黃巢)에게 고하노라. 대저 바름을 지키면서 떳떳함을 닦는 것을 도(道)라고 하고, 위기를 당하여 변통하는 것을 권(權)이라고 한다. 지혜로운 자는 시기에 순응해서 공을 이루고, 어리석은 자는 이치를 거슬러서 패망하고 만다. 그렇다면 백 년의 인생 동안 생사(生死)를 기약하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만사(萬事)를 마음으로 판단하여 시비(是非)를 분별할 줄은 알아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 왕사(王師)는 정벌하면 싸우지 않고도 이기며, 군정(軍政)은 은혜를 앞세우고 처벌은 뒤로 미룬다. 장차 상경(上京)을 수복하려는 이때에 우선 큰 신의(信義)를 보여 주려고 하니, 타이르는 말을 공경히 듣고서 간악한 꾀를 거두도록 하라”

 

▲ 이덕일 역사학자.     © 함양군민신문

 

 이덕일 역사평론가는 당나라 시절 최치원을 이렇게 기록한다. 

 

 “최치원이 쓴 ‘토황소격문’을 읽던 황소가 간담이 서늘해져 자기도 모르게 의자에서 굴러 떨어졌다는 일화가 회자되면서 최치원의 문명은 당나라 전체에 높아져 갔지요, ‘토황소격문’은 당나라 전체에 필사되어 돌아다녔고 합니다. 최치원은 4년간 고변의 군막에서 표(表)나 격문 등을 저술하는 일에 종사한 공으로 879년 도통순관에 승차되면서 당 희종으로부터 비은어대(緋銀魚袋)와 자금어대(紫金魚袋)를 하사받았습니다. 황제에게 인정받은 최치원은 당나라에서 출세할 수 있는 모든 요건을 갖춘 셈이지요”

 

 이른바 최치원은 중국 당나라의 군사전략가이었다. 최치원의 당나라에서의 이런 행적(내란 주모자를 공격한)을 시진평은 높이 평가하고 있다. 시진평은 최치원의 시를 빌어 한국을 향해 메시지를 전한다.

 

 “신라의 최 선생이 중국에 와 중국의 번영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한국도 우리 중국과 선린의 관계를 돈독하게 합시다” 
 
 ◆두 자매 무덤 속에서 귀신이 나타나다
○…현재 중국땅에는 최치원과 관련된 유적들이 많다. 중국 남경시 율수현에 영수탑이 있다. 당나라 시대 원형을 복원한 거대한 7층탑이다. 이 탑 2층에 최치원 초상화가 부착되어 있다. 율수현 관광센터에 가면 최치원을 테마로 한 각종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다.

 

▲ 중국 율수현 쌍녀분.     © 함양군민신문

 

 최치원이 중국유학을 마치고 신라로 귀국하는 모습, 쌍녀분(雙女墳) 귀신들과 대화하는 최치원의 모습 등이다.

 

 최치원은 율수현과 무슨 인연이 있는가? 그는 과거 급제후 율수현 현위로 부임한다. 최치원 현위는 어느날 공무로 객잔(여관)에 투숙하게 된다. 그 여관 앞에 묘지(쌍녀분)가 있었다. 객잔주인이 묘지의 주인공의 이력을 설명했다. “저 쌍녀분의 주인공은 강제결혼을 피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장씨 자매 올씨다”

 

 이에 최치원은 자매의 슬픈 운명을 위로하고자 시를 한 편 쓴다. 이 시에 감동한 두 자매(귀신)가 밤에 최치원을 찾아와 하룻밤을 지내고 새벽에 무덤 속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현재 중국 남경시 율수현 주민들은 말한다. “신라사람 최치원은 영혼을 위로하는 퇴마사였지요. 그가 자매를 위로해준 후, 무덤에서 이적(異蹟)이 발생했습니다. 난치병에 걸린 자가 쌍녀분에 가 기도하면 병이 말끔히 낫곤 했답니다”

 

○…2012년 KBS-TV 『역사스페셜』에서 ‘최치원 다큐드라마’를 방영했다. “(나레이션) 최치원은 ‘토황소격문’을 쓰고 25세의 젊은 나이에 자금어대를 받을 정도로 중국에서 성공한 인물이었다. 본인만 원한다면 얼마든지 중국에서 큰 벼슬을 할 수 있었지만 그는 (신라로) 귀국한다.  귀국후 중앙요직이 아닌 변방 경남 함양태수로 부임한다. 그는 왜 지방태수라는 미관말직에 머물렀을까? 최치원이 귀국하자 나라에서 그에게 한림학사 벼슬을 준다. 그러나 그 자리는 최치원의 경륜과 포부를 펼칠만한 자리가 아니었다. 차라리 변방으로 가 변방 주민들의 애환을 보살피는 목민관이 되고자 자청해 함양태수로 가게 된다…”

 

 함양태수 최치원은 함양에서 혁혁한 업적을 쌓는다. 상림공원숲을 조성한 게 바로 그것이다.

 

▲ 상연대 일서 스님.     © 함양군민신문

 

 함양군 백전면에 백운산이 있다. 백운산은 산정상에 항상 흰구름이 걸처져 있다는 데서 유래가 되었다. 정상에서 조망 또한 좋아서 지리산 전체를 바라볼 수 있다. 북쪽으로 넉넉한 덕유산과 그 너머에 황석, 거망, 월봉 .금원, 기백산도 가까이 보이고 동북으로는 가야산, 황매산도 가물거린다. 백운산 기슭에 상연대가 있다. 상연대(上蓮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 해인사의 말사다. 이 암자와 최치원이 깊은 관련 있다.  상연대 일서 스님 말씀이다. “최치원 선생이 어머니의 기도처로 건립하여 관음기도 하던 중 관세음보살이 나타나 상연대라 이름짓게 되었다고 합니다”

 

 역사학자 이덕일과 KBS-TV 역사스페셜은 계속해 최치원의 함양태수를 추적한다.

 

 (이덕일) 최치원은 당나라에서 익힌 정치사상과 행정 경험을 바탕으로 신라 사회를 개혁하려 했다. 그의 정치사상이란 유학(儒學)정치 사상을 뜻한다. 유학정치 사상은 과거제를 기본으로 운용되는 체제로서 신분제를 기본으로 운용되는 신라의 골품제와는 전혀 다른 정치사상이었다. 신라는 능력이 아니라 출생 당시의 출신성분에 따라 인생이 결정되는 폐쇄적인 사회였다. 최치원은 이를 유학정치 체제라는 좀더 개방적인 사회제도로 바꾸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특권의식에 사로잡힌 진골 귀족들은 이를 거부했다.

 

 『삼국사기』 ‘최치원 열전’은 “최치원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당나라에 유학해 얻은 바가 많아서 앞으로 자신의 뜻을 행하려 하였으나 신라가 쇠퇴하는 때여서 의심과 시기가 많아 용납되지 않았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가 받은 ‘의심과 시기’는 그가 육두품 출신이기에 더욱 거세게 가해졌다. 최치원 자신이 육두품을 ‘득난’(得難)이라고 말한 것처럼 이 역시 지배계급의 일원임에는 틀림없으나 진골 위주의 신라 사회에서는 중간 지배계층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KBS 나레이션) 함양태수 시절인 892년 최치원은 신라 진성여왕에게 사회개혁안인 시무 10여조를 바친다. 진성여왕 때는 신라가 가장 혼란했던 시기로 신라멸망의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지방태수로 있던 최치원은 나라의  장래를 크게 우려했고, 신라를 다시 세우기 위해서는 사회개혁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시무 10여조를 올렸다”

 

 그러나 최치원의 시무10여조는 받아드려지지 않았다. 이에 최치원은 미련 없이 관직을 버리고 해인사로 은둔한다. 해인사로 은둔한 최치원은 그 어느 때보다도 열정적으로 저술활동에 몰두한다. 그의 마지막 저술인 『신라수창군등루기』는 현실참여론이 기록되어 있다. 그는 비운의 혁명가였다.

 

▲ 함양군 최치원 역사공원이 내·외부 단장을 마치고 내년 4월 일반인에게 공개된다.     © 함양군민신문

 

○…함양군이 고운 최치원 선생의 발자취와 사상 등 업적을 기리는 최치원 역사공원 조성사업 마무리 작업에 한창이다. 함양군은 지난 2008년부터 10개년 사업으로 사업비 약 110억 원을 들여 상림공원 인근 1만8521㎡ 부지에 최치원 역사공원을 조성 중이다.  

 

 현재 75%의 공정률을 보이는 최치원 역사공원은 선생의 호를 딴 고운루를 지나 양옆으로 고운역사관과 상림관이, 그리고 정면으로는 선생의 영정이 모셔진 기념관이 자리한 우리나라 전통적인 배치로 이뤄졌다. 고운 역사관은 최치원 선생의 생애와 문학의 발자취를 사료와 탁본, 문장 등 전시물들이 내부 공간을 채운다고 한다.

 

 함양 최치원 역사공원 조성에 참고가 될까 싶어 국내 최치원과 관련이 있는 콘텐츠를 입수, 소개해 본다.

 

▲ 천부경(天符經)은 천제한국(天帝桓國)에서 말로만 전해지다 한웅(桓雄)이 하늘에서 내려온 뒤 신지(神誌) 혁덕(赫德)에게 명하여 녹도(鹿圖)의 글로써 이를 기록케 하였다.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은 일찍이 신지의 전문(篆文)을 옛 비석에서 보고 다시 이를 첩(帖)으로 만들어 세상에 전하게 된 것이다.     © 함양군민신문

 

 ①경주 상서장=최치원 공부방. ②경주 독서당=최치원이 당나라 유학 가기 전 학문을 닦은 곳. ③부산 동백섬 최치원 유적지=바위에 최치원 친필이 적혀져 있다. ④창원 월영대=최치원이 대(臺)를 쌓고 제자들을 가르친 곳. ⑤양산 임경대=최치원 글씨가 절벽에 적혀져 있다. ⑥함양상림=천년숲. ⑦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최치원이 비문을 썼다. ⑧정읍 무성서원=최치원이 이 곳에서 현령을 지냈다. ⑨군산 옥구향교=최치원이 소년시절 이곳 정자에서 책을 읽었는데 이 소리가 당나라까지 들렸다고 한다. ⑩보령 성주사 남해화상 백월보광탑비=비문을 최치원이 썼다. ⑪문경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비. (자료출처=김은미·김영우 박사 공저 『고운 최치원, 나루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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