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성만 뮤지션. 중년까지 운세팔자가 나빴으나 거기마을에 온 후 일취월장하고 있다. © 함양군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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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대란 나무나 돌로 만든 새를 장대나 돌기둥 위에 얹힌 마을의 신앙대상물을 일컫는다. 이러한 솟대를 마을사람들은 음력 정월 대보름에 동제(洞祭) 모실 때에, 마을의 수호 그리고 풍농을 위하여 마을 입구에 세운다. 솟대는 홀로 세워지기도 하지만 대개 장승과 함께 세운다. 이때 장승은 제액 초복의 역할을 담당하고 솟대는 (마을의 길흉을 좌우하는) 우주와 교신하는 터미널 역할을 한다. 함양군 서하면 거기마을 초입에 솟대와 장승이 세워져 있다. 솟대를 마을입구에 세우는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솟대연구가 이필영 교수(한남대사범대 역사교육과)에 따르면 “마을입구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모든 초자연적 존재들이 드나드는 장소로서 때로는 재액(災厄), 악역(惡疫), 부정(不淨)이 침입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마을입구란 마을 안의 신성과 질서의 세계, 마을 밖의 부정과 무질서의 세계가 경계 지워지며 동시에 접촉되는 공간이기에 보다 강한 신성으로 마을 밖의 부정을 막으며 마을의 신성을 지키려 했던 것입니다. 마을의 신성을 지키는 강력한 상징물이 다름아닌 솟대와 장승이지요”
◆죽음직전에서 서울탈출
○…4년 전, 2014년 봄(4월 3일). 서울 천호동 반지하방에 한 사내가 헛것을 보았다. 나무 팻말을 든 저승사자가 방으로 쑥 들어왔다. 저승사자는 돼지갈기로 엮은 솔에 끈적끈적한 염홍색 피를 적시더니 사내의 머리를 빗겨주며, “이놈아, 낼모레 저승갈 건데 머리는 빗고 가야지, 으하하하”
사내는 저승사자의 부축을 받으며 어두운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동굴 속에 수많은 박쥐들이 붙어 있었다. 사내가 동굴로 들어오자 일제히 사내의 얼굴에 똥과 오줌을 퍼부어댔다…사내는 비명을 내지르며 잠에서 깨어났다.
4월 4일 서울 천호시장 국밥집. 사내 앞에 한 중년남자가 앉아 있다. 사내가 숟가락을 탁자에 놓으며 “밥이 입 속으로 안 들어가네요, 형님. 저는 매일 악몽에 시달려 도저히 살 수가 없습니다. 몸도 너무나 쇠약해져 기력이 없습니다. 서울생활 청산하고 시골로 내려가 좋은 공기 마시며 부처님 전에 염불이나 외우며 살고 싶습니다. 형님, 잘 아는 시골분 계시면 소개 좀 해 주세요”
4월 말. 사내는 중년남자와 함께 육십령을 지나 함양군 서상면, 서하면 일대를 배회했다. 두 사람은 서하면 거기마을 언덕배기에 당도했다. 중년남자가 말했다.
▲ 거기마을 입구에 세워진 솟대와 장승, 옆인물은 최삼철 마을총무다. © 함양군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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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을 이름이 거기(居起), 머무를 居에 일어설 起, 바람을 막아주는 산이 둘러쳐져 있고 그 내부공간에 자그마한 실개천이 흐른다. 거기라는 지명 속에 어떤 기운이 흐른다. 자네가 이곳에서 정양하면 허물어진 자네 심신이 추슬러지지 않겠나? 싶네. 이곳 주민들과 잘 상의해, 이 곳 한 모퉁이에 자리를 한번 잡아보도록 해라”
▲ 서하면 거기마을은 계곡의 맑은 생수가 흐르는 마을이라 하여 옛마을 이름이 화계촌(花溪村)이다. © 함양군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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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하면 거기마을은 계곡의 맑은 생수가 흐르는 마을이라 하여 마을 이름을 화계촌(花溪村)이라고 불러왔다. 그러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지금의 거기(居起)로 이름 지어졌다. 거기마을은 조선 숙종 때 함양박씨가 처음 들어와서 정착하였고 연이어 신창맹씨가 들어왔다. 마을 뒷 편 높은 산인 주화산 골짜기의 아름다운 꽃이 무수히 피어나서 조용한 계곡이 별유천지로 여겨지는 마을이다. 거기마을은 음지마을과 양지마을로 구분되어 있다. 마침내 사내는 음지마을 산비탈에 빈집을 구했다. 2014년 여름(7월 29일). 필자는 안의면에서 약초상을 하는 조광환 씨를 통해 이 사내를 알게 되었다.
“(조광환의 말) 이름은 최성만이라고 합니다. 서울서 이름 꽤나 날렸던 뮤지션이었다 카던데요. 8월초에 최성만씨 음악 패밀리들이 거기마을 최씨 집에 집결, 음악회를 연다는데 구경 가지 않을래요?”
8월초, 조광환 약초꾼과 함께 다 저문 해거름에 최씨 움막에 도착했다. 거기마을 깊은 산속은 따그르르 새 울음소리뿐 그저 적요했다. 밤하늘에 별들이 하나둘씩 피어오르고, 칠흑같은 어둠이 최씨 움막 주변으로 밀려왔다. 최씨집 마당에 화톳불이 피어오르고, 마침내 최성만 음악 패밀리들이 연주를 시작한다.
밀짚모자를 쓴 기타맨이 추억의 영화 ‘금지된 장난Forbidden Games’을 연주한다. 기타연주소리에 금지된 장난 영상이 절로 필자 뇌리에서 피어났다.
다음은 영화 ‘금지된 장난’ 시놉시스이다.
“다섯 살 난 여자아이 폴레트(브리지트 포세)는 파리에서 탈출한 부모가 공습 때 목숨을 잃으면서 고아가 된다. 한 농부 가족이 마지못해 떠맡은 폴레트는 그 집의 11살 된 작은 아들 미셸(조르주 푸줄리)과 가까워지고, 두 아이는 자신들만의 비밀스러운 세상을 만들어내는데 거기에는 주변 도처에 널려 있는 죽음이 반영되어 있다(하략)”
이어 최성만 씨가 색소폰 연주를 한다. 곡명은 1960년 히트송 한명숙의 ‘그리운 얼굴’. 최씨의 연주에 맞춰 (필자는) 한명숙의 노래를 불렀다.
“별들이 하나 둘 살아나듯이 뽀얗게 떠오르는 그리운 얼굴/ 눈감으면 고향이 눈뜨면 타향/ 구름은 하늘에서 서로 만나듯/ 강물도 바다에서 서로 만나듯/우리도 고향 길에 서로 만나서 조용히 고향노래 서로 불러요/ 별들이 하나 둘 살아나듯이/ 뽀얗게 떠오르는 그리운 얼굴/눈감으면 고향이 눈뜨면 타향…”
이 노래는 JTBC 에서 방영했던 김운경 극본 ‘유나의 거리’ 삽입곡이기도 한다. 이어 대전서 온 바람의 아들(별명)이 마이크를 잡고 흘러간 추억의 노래, 나애심 문주란의 ‘백치 아다다’, 최무룡 문정숙의 ‘나는 가야지’를 부른다.
산속 연주회를 지켜보면서 (필자는), “야, 이건, 쿠바의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을 능가하는 명연주인데?” 환호성을 터트렸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은 한물 간 쿠바의 명 뮤지션들의 연주모임을 말한다. 이들의 연주는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며 전 세계 음악팬들 사이에 커다란 감동을 주었다.
연주가 끝난 후, 필자는 최성만 씨와 막걸리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그의 지난 이력을 전해 들었다. “1955년생입니다. 어릴 적에 서울 광화문 새문안교회 앞에서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1940년대 한국 최고의 건달이었지요. SBS에서 방영했던 조폭주먹드라마 야인시대에 나오는 김영태와 아버지는 이복형제입니다. 부친께서는 아편중독자였지요, 저는 코흘리개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서울 중구 지금 프라자호텔 뒤편 중국인거리로 가 아버지가 흡입할 아편을 구입하고 했지요, 중학교 다닐 때 음악패거리들과 어울리며 기타 드럼 색소폰을 불렀습니다. 부자유친이라, 아버지의 삶이 황폐했듯이 제 삶도 너무너무 고단했습니다. 첫 여자와 이혼하고 두 번째 여자와도 결별하고, 하는 일마다 부도가 나고, 누군가가 저보고 호를 붙여줬어요. 인생말종! 엎친데 겹쳐 어느 날 제 몸에 신이 들어왔습니다.
신내림을 받을까 하다가 하나 밖에 없는 딸의 장래를 위해 신을 거부했는데, 글쎄 잡귀신들이 매일 밤 찾아와 저를 괴롭히는 바람에(앞서 모두에 언급한 저승사자 참조)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이 난관에서 탈출하기 위해 이렇게 거기마을에 오게 된 거지요. 거기마을에 온 후 불상을 구해 단을 쌓고 매일매일 기도를 하니까 잡귀신이 물러가더이다. 저는 지금 육신이 안온합니다, 이 좋은 곳에서 여생을 보낼까 합니다. 이곳에서 비러뱅이로 살 수는 없는 노릇, 산비탈에 삼백초를 조금 심어놓고 농사일을 하나씩 배우고 있습니다. 기회가 되면 마을 사람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며 보답을 하고 싶은 데, 그 좋은 일이란 음악입니다. 내가 예전에 사귀었던 왕년의 뮤지션들을 불러들여 거기마을을 사운드오브뮤직의 메카로 만들고 싶은 게 제 꿈입니다”
◆‘갈데까지 가보자’ 출연
○…그해 11월 채널 A ‘갈데까지 가보자’ 작가한테서 전화가 왔다. “함양권역 이색적인 삶을 살고 있는 분을 추천해 달라” 필자는 최성만 씨를 천거했다. 마침내 촬영팀이 거기마을로 내려와 촬영에 임했다. 2015년 3월. 제 119회 ‘갈데까지 가보자’ 프로그램은 이렇게 시작된다.
“여기는 육십령 지나 거기마을, 대도시 유흥주점에서 밀려난 퇴물이 산다. 텃밭을 일구고 통나무를 깎아 만든 불상, 돌계단으로 아름답게 집을 꾸몄다. 왕년에 도시의 밤을 주름잡았던 명 뮤지션 최성만 씨는 이곳에서 솟대도 만들고 장승을 만들어 마을을 더욱 예쁘게 꾸며주고 있다”
방송의 힘은 실로 대단했다. ‘갈데까지 가보자’ 방송이 나간 후 최씨는 거기마을의 최고인기스타가 됐다. 양지마을 최삼철 주민이 최성만씨를 찾아왔다.
“하이고 형님 방송을 봤는데 대단한 분이셨더군요. 서울룸살롱에서 노태우 같은 정치거물 앞에서 기타를 쳤다? 와 죽여준다! 히히히. 형님, 산청군에 장사익 노래 축제가 있는데 우리도 그런 거 거기마을에서 한번 해 봅시다. 형님 옛날 조직들 불러들여 산상 연주회를 하면 우하하하 전국적으로 화제만발 안 하겠슴니꺼?”
최삼철씨의 제의를 냉큼 손덕준 양지마을 이장, 손종선 마을운영위원장이 받아들였다. 이들은 최성만씨를 얼굴마담으로 한 기획서를 만들었다. 기획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거기마을에 솟대 장승을 세우고 무대를 만들어 산속 연주회를 연다!”
▲ 거기마을 주민들이 창조마을 성공을 염원하며 수동메기찜집에서 회식파티를 열었다. 우측인물는 최근 ©함양군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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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이들이 제출한 창조마을 만들기 페이퍼에 동그라미 5개 점수를 줬다.
세월이 흘러 2017년 5월초. 필자는 거기마을 최성만씨의 장승 솟대 작업장을 찾았다. “거기마을 창조마을 선정을 축하합니다. 그래, 창조마을 꾸미기 진행 잘 되고 있소?” “응, 제1 작업으로, 왕년에 나와 하께 연주생활을 했던 기타맨을 거기마을로 데려와 살게 했어. 이름은 송만호. 61세야”
“아! 옛날에 프랑스 전쟁영화 금지된 장난 연주했던?”
“그렇지!”
“제2 작업은”
“솟대 장승을 마을 곳곳에 세우는 거야, 그후에 멋진 무대를 만들고, 함양군의 이색명소로 만들어 보는 게 나의 꿈일세”
“형님(최성만) 함양 와서 횡재를 했심니더, 산청군이 긴장해야 겠네, 장사익 음악회 저리가라, 최성만 음악패밀리 산상 음악회 나가산다 판이 되겠습니다, 하하하”
“내 나이 60이 넘었는데, 저세상 가기 전에 보람찬 일 하나는 해놓고 가야지, 안 그렇소?”
“형님 솟대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거기마을 주민들하고 잘 상의해 거기마을 솟대 기획상품을 만들어 보세요. 빅히트칠 것 같습니다”
최성만 씨의 솟대를 다시 한 번 유심히 관찰했다. 울퉁불퉁한 장대 기둥(Poles and Posts) 위에 오리 한 마리가 서방정토를 바라보고 있다. 왜 하필이면 오리냐? 오리는 대홍수 때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불사(不死)의 새라고 한다. 즉, 마을 홍수나 재해로부터 구언할 수 있는 ‘능력의 새’란다. 오리는 물의 속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화재를 막아준다고 옛사람은 믿었다. 한편 오리는 철새이다. 철새는 계절이 바뀌는 변화를 암시해 주고 초자연적 세계로의 여행을 의미하여 산 자와 죽은 자의 세계를 넘나드는 영혼의 순환적 여행을 뜻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통구스족(族)은 오리가 되돌아오는 것을 영혼의 이주(a kind of migration soul)라고 생각했다.
“최성만 형, 선암사 수제차가 전국적 명성이 자자하듯, 앞으로 거기마을 산(産) 솟대도 화제만발을 일으킬 겁니다. 한번 (솟대를) 잘 만들어 보십시오. 나중에 솟대 시판하면 몇 개 구입, 내 친구들에게 선물하고 싶네요, 그럼, 저는 이만…”
“그래 동생, 조심히 가시게”
▲ 거기마을 회관 앞에서 마을사람들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 함양군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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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마을을 내려오면서 필자는 연신 콧노래로 ‘금지된 장난’을 흥얼거렸다. 올여름 소낙비 내릴 때 居起마을 산속에서 이 음악연주를 꼭 들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