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의 백년 ‘老鋪’ 강복상회를 찾아서

구본갑 논설위원 | 입력 : 2017/04/10 [10:05]

 

▲ 따님 강명남 여사. 곡물에 관한한 귀신이다. “이 메주 사가면 절대 후회 안 합니다.”     © 함양군민신문

 

◆폭탄 떨어지는 전쟁터에서 보따리 장사를 했소
노모(老母) 이름은 양임분. 1932년생 임신년(壬申年) 원숭이띠. 20세 때 처녀의 몸으로 보따리 곡물장수로 나서 현재에 이름. 66년 관록.

 

딸, 강명남. 금년 나이 59세. 20세 때 처녀의 몸으로 쌀장수 시작, 현재에 이름.

 

두 모녀(母女), 곡물업계에 투신한 햇수 합(合)이 100년! 

 

함양군 함양읍 용평중앙길 20 지리산함양시장. 이영재 전 도의원 모친 건어물 가게(유진상회)에서 인월 가는 방향에 수십 개의 곡물 파는 점방들이 있다. 그 가게 중에 특이한 옥호를 가진 상점이 있다. 강복상회. 아마 주인장 성씨가 강(姜), 진주강씨인가 보다. ‘강(姜)씨 가게에 들어오면 복(福) 많이 받는다…’

 

강복상회 입구에 네모난 메주, 귀리, 청조, 기장, 고춧가루, 서리태, 땅콩 등이 놓여져 있다.

 

▲ 강복상회 창립자 양임분 할머니(86세)     © 함양군민신문


  
강복상회 설립자는 1932년생 양임분, 후계자는 강명남(딸). 삼성그룹으로 치면 양임분 할머니는 이병철이요, 강명남은 이건희다.

 

“(양임분 할머니의 말) 내고향은 전북 남원시 산내면. 지금으로부터 66년 전인 갑다. 년도로는 1949년. 그때, 내가 처녀의 몸으로 쌀도 팔고 보리도 팔고, 콩도 팔고 그랬다, 머리에 쌀 콩 보리를 이고 전북 임실장, 무주장, 인월장, 경남 함양장, 산청장으로 가, 쌀 사소, 보리 사소 그랬지. 그러다가 1년후 6·25전쟁 발발! 전쟁 때도 5일장 돌아다니몬서 곡석(穀食)을 안 팔았나, 내가 키가 조고만해도, 얼굴은 볼폼 없는 메주덩어리라도, 내가 말이다, 생활력이 아주 강했다”

 

 “할매, 그때 1950년 6월부터 1953년 7월까지, 하늘에서 폭탄이 쏟아지고, 빨갱이들이 남원 함양 거창 비트(비밀아지트)에 숨어서  양민들, 국방군 할 것 없이 마구 총질을 했는데, 우찌?”

 

 “그 위험 속에서도 장사를 했느냐? 이 말이가? 바보멍충이같은 질문하고 있네. 장사를 하다보면 폭탄, 빨갱이들 피해가는 비법을 다 알게 되어 있는 기라. 그렇게 쌀보리 보따리 장수를 하다가 한푼 두푼 돈을 모아 함양장에 점포를 얻었다. 그 후부터 이 자리에서 장사를 하게 됭 거라. 서방은 산청군 원지 사람인데 이름이 강우봉주, 이름이 넉자다. 지금은 저승에 갔는디 천하 한량이였다. 나혼자 새(혀)가 빠지게 시장에서 장사를 하면 그 양반은 시조창이나 하고 그랬지. 허허”

 

 “옥호(屋號)가 왜, 강복입니까?”

 

 “아, 그거는 우리 딸내미한테 물어보소”

 

 따님 강명남은 독실한 천주교인이다. 영세명은 미카엘라. 미카엘라(Michaela)는 천주교의 3 대천사(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중 하나이다. 강명남 따님이 옥호를 설명한다.

 

 “불교에서는 성불(成佛)하십시오, 그라잖아요, 우리 천주교에서 강복하소서…그럽니다. 강복(降福)은 사람(병자들)이나 물건(종교 기물)을 위해 복을 비는 것을 뜻합니다”

 

 “강명남 여사도 어머니처럼 약관 스물에 쌀장수(곡물)를 했네요? 그래 이 장사를 하면서 재미를 좀 봤습니까?”

 

▲ 함양 쌀가게 루트.     © 함양군민신문

 

 “요즘은 불경기라 가게 문 열어봐야 적자입니다. 예전에는 대단했지요, 우리 함양 곡물이 예나 지금이나 소비자들부터 신뢰를 받고 있습니다. 물건 질이 타(他) 지방 것보다 월등히 좋습니다. 어머니 60년, 저, 40여년 이 장사를 했으니 경향각지에 도쿠이(단골)들이 많지요. 한때는 함양 강복상회하몬, 물건 안 보고도 그냥 주문이 들어왔습니다”

 

 “지리산함양상인회 부회장을 맡고 있군요, 향토시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그럼요, 그 자부심 하나로 40년 세월을 함양시장을 지켜온 접니다. 함양시장의 명예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지리산 함양시장 상인 사기진작을 위해 시장 주차장에서 콩쿠르대회(KNN 쑈! TV 유랑극단 지리산함양시장 특집방송)가 개최되면 ‘1 빠따’로 무대 위에 올라가 ‘천년바위’ 한 곡조 멋드러지게 열창하는 여걸(女傑) ‘강명남’이다.

 

 “강복상회에서 취급하는 품목은 뭡니까?”

 

 “첫째, 조입니다. 조를 좁쌀이라고 해서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알고 보면 조가 천하영약입니다. 좁쌀뜨물은 곽란으로 열이 날 때 마시면 아주 좋습니다”

 

 『본초습유 (本草拾遺)』에서는 “좁쌀을 물에 끓여 먹으면 복통 및 코피를 다스리고, 가루로 만들어 물에 타서 즙을 먹으면 모든 독을 푼다. 곽란 및 위통을 다스리며 또 놀라는 병을 다스린다”고 했다.

 

 『본초강목』에서는 “차좁쌀은 폐병을 다스린다. 차조는 폐의 곡물이니 폐병환자가 마땅히 먹는다”고 했다. 조는 식이섬유가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서 장의 운동을 촉진시켜 대장암을 예방하는데 효과가 있다.

 

  “둘째 귀리입니다. 최근, 귀리가 대인기인데, 미국 『타임』이 선정한 10대 슈퍼푸드 중 하나라는 것 아닙니까. 10대 슈퍼푸드는 토마토, 시금치, 브로콜리, 연어, 마늘 등인데 곡물 중에서는 귀리가 유일하게 포함이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귀리는 면역력을 증진시켜주는 식품으로 알려져 있으며 당뇨병 예방에도 도움을 주는 기능을 하고 있어 ?주목받고 있답니다”

 

▲ 당뇨 최고의 보약, 귀리.     © 함양군민신문

 

 귀리에는 백미에 비해 단백질이 3배, 섬유질이 6배나 함유되어 있고 칼슘, 철분, 엽산, 망간, 인, 마그네슘, 비타민B1 등 우리 몸에 필요한 각종 비타민과 미네랄, 필수아미노산 등의 영양소가 균형 있게 함유되어 있다.

 

 이외, 수수, 율무, 기장, 참기름, 산초가루, 고춧가루, 서리태(콩), 쌀 등을 판매한다. 산초나무는 쥐손이풀목 운향과 초피나무속 낙엽관목이다.

 

▲ 지리산 함양시장 내 떡집. 산초기름을 짠다.     © 함양군민신문

 

 “산초(山椒) 기름이 좋다고들 합니다. 구전 민간요법에 따르면 산후풍(아이 낳고 바람 들었을 때), 콧속이 헐었을 때, 안검연축(눈을 깜박거리는 증세)에 이 기름이 그만이라고들 합니다. 강복상회에 산초기름을 주문하면 되나요?”

 

 “아 ,그럼요. 최고의 상품을 제공하겠습니다”

 

 강복 상회 입구에 사각형으로 잘 빚어진 메주가 있다. 메주는 콩을 삶아 찧어서 뭉친 덩어리이다. 콩을 푹 삶아 으깬 것을 덩어리로 만들어 2, 3일 건조시키고, 큰 그릇에 짚을 깔고 그 위에 메주를 놓고 뚜껑을 덮은 다음, 27~28℃에서 14일 정도 띄운다. 이것을 햇볕에 말려서 간장·된장·고추장을 담그는 원료로 쓴다. 개량 메주는 삶은 콩에 밀가루와 보리·밀을 섞어 황국균을 번식시켜 만든 것으로 간장용과 된장용으로 구분한다.

 

메주와 관련된 사뭇 철학적인 글이 있다. 작가 ‘매호’는 메주를 이렇게 노래했다.

 

 “가마솥 가득히 메주콩이 익어간다. 입 안에 고일 구수함을 품어 가고 있다. 참나무 장작 솔 장작 그리고 안차리 모두 섞여서 불꽃이 되고 무려 800도의 열을 낸다. 푹, 그리고 잘 익어야, 맛있는 장 담글 수 있는 메주가 된다. 설익은 메주는 아무 쓸모가 없다. 우리도 구수한 향이 나는 인간이 되려면 속살 깊이 까지, 남김없이 익어야 된다”

 

 강복상회 취재를 하면서 쌀 한 봉지를 샀다. 양임분 할머니가 “소복이 주카, 깎아서 주카, 소복이는 5천원, 깎은 거는 4천원”

 

 됫박에 쌀을 담는 할머니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우리들에게 ‘쌀’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봤다.
 
 “쌀밥이 보약이다.”, “쌀밥 한 알이 귀신 열을 쫒아낸다.”

 

 한국인에게 쌀밥은 의미가 매우 크다. 동학의 2대교주 해월 최시형은 “쌀밥이 곧 하늘(한울님)이다”라고 주장했다. 우리 조상들이 밥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겼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발언이다.(정혜경 호서대학교 영양학과교수의 말)

 

 많은 문인들은 쌀밥을 소재로 한 글들을 남겼다.

 

 수필가 정목일이 쓴 수필 ‘고봉밥’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져 있다. 고봉밥은 밥을 퍼 놓은 모양이 그릇 위로 수북한 밥을 말한다.

 

◆수필가 정목일과 고봉밥
  …고봉밥엔 한국 어머니의 애환과 사랑이 담겨 있다. 어머니 몰래 월남전에 참전하기 한 달 전쯤, 하루 휴가를 얻어 집으로 갔을 때였다. 저녁 무렵이었고, 알리지도 않았기에 밥이 있을 리 없었다. 어머니는 황급히 부엌으로 들어가시더니, 상 위에 고봉밥을 얹어 오셨다. “웬 밥이냐?”고 묻자, “오빠가 바깥에 나가 있어도, 엄마는 먼저 오빠 밥그릇부터 떠놓으신다.”고 여동생이 나즉이 말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고봉밥은 사랑이었다. 옛 주부들은 출타한 남편이나 아들을 위해서 반드시 밥을 떠놓았다. 객지에 있지만, 자나 깨나 그 모습이 눈에 밟혀서 고봉밥을 떠놓지 않을 수 없었다. 밥만은 거르지 말라는 기원과 염원이 담겨 있다. 밥은 곧 몸이고 생명줄임을 안다. 밥은 건강과 무사함을 상징하기도 한다. 어디서든지 건강하게 기운을 차리라는 모성의 강한 기구가 고봉밥에 담겨 있다….

 

◆노태우 전대통령과 갱시기
 강복상회 하얀 쌀을 물끄러미 바라다보니 문득, 대통령들의 식단이 생각났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철갑상어알을 좋아했다면, 노태우 전 대통령은 ‘갱시기(국시기)’를 좋아했다.

 

▲ 궁핍했던 시절의 최고 별미…갱시기.     © 함양군민신문

 

 갱시기는 가난한 시절에 추운 겨울을 날 수 있도록 돕는 구황 음식이다. 1970년대 이전, 먹고살기 어려웠던 시절에 많은 식구들의 끼니를 때울 때 해 먹었던 음식이다. 갱시기 만드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송송 썬 김치와 고구마를 냄비에 넣고 한 소큼 끓으면 찬밥을 넣어 퍼질 때까지 뭉근한 불에서 끓인다. 실파를 어슷하게 썰어 넣고 소금, 간장으로 간을 맞춘다. 먹다 남은 찬밥을 이용할 때 밥을 너무 많이 넣으면 끓은 다음 밥이 불어서 국물이 없어지므로 밥은 적게 넣고 국물이 있게 한다.

 

 반찬은 따로 필요 없으며 동치미 국물과 잘 어울린다. 노태우는 청와대에 있을 때 막료들과 함께 종종 갱시기를 먹었다. 갱시기는 해장, 식사, 안주가 동시에 되는 메뉴다. 일종의 죽 요리이므로 실제 섭취량보다 포만감이 크고, 재료가 무를 때까지 푹 끓인 음식이기에 소화 흡수가 빠르다는 특성을 지녔다. 육수와 김치 양념만으로 만들기 때문에 맛이 자극적이지 않고, 잘 익은 묵은지의 신맛은 입맛을 돌게 해줘 매운맛 없이도 속풀이 해장이 된다.

 

▲ 노태우 전 대통령.     © 함양군민신문

 

 노태우는 말한다. “우리 어무이, 서방 잃고 자식새끼 키운다고 참 고생 많았지, 그 어려웠던 시절, 우리 식구는 365일 허구헌날 갱시기를 묵었다네. 그게, 인이 박혀 지금도 갱시기를 안 묵으면 밥 묵은 것 같지가 않아요, 허허. 갱시기를 돼지죽 같다 해서 젊은 놈들이 기피하는데, 갱시기는, 정말이지 진짜 맛있소. 우리 어무이 돌아가시기 전에, 나 죽으면 너그들 내 제삿상 차리지 말고, 메루치 마이 넣고 갱시기 한 그릇 끓이도고”라고 유언을 했었지…”

 

 장터마다 저마다의 이색음식이 있다. 창녕군에는 수구레국밥이, 의정부시에는 부대찌개, 안동시에는 헛제사밥이 유명하다.

 

 지리산 함양시장에 함양쌀로 만든, 서민들의 음식, 갱시기국밥집 하나 생기면 전국적인 화제를 모을 수 있지 않을까? 

 

 강복상회 인터뷰를 마치고, 가게 문을 빠져나오면서 따님에게 물었다. “강복상회는 어떤 루트로 곡물들을 입수하나요?”

 

 “저희는 농협 가격보다 10프로 정도 더 주고 농작물을 구입합니다. 팔 때는 10프로 정도 저렴하게 팝니다. 품질? 묻지 마세요. 넘버원입니다!”


 구본갑 논설위원busan7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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