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에 ‘神秘스런 동굴’ 4개가 존재한다

구본갑 논설위원 | 입력 : 2017/03/13 [13:39]

 

▲ 영기가 가득 흐르는 백무동 영통암.     © 함양군민신문


○…중국 고전 『서유기(西遊記)』 첫 장에 동굴 이야기가 나온다. 먼옛날 동승신주에 ‘오래국’이란 나라가 있었다. 이 나라는 큰바다를 끼고 있는데 그 바다 한가운데 섬에 화과산(함양군에도 화과원·花果院이 있다)이 있다. 화과산 꼭대기 신기한 바윗돌에서 원숭이 한 마리가 탄생하는데 이 놈이 바로 손오공이다. 저절로 태어난 오공은 원숭이 무리들과 유람에 나섰다가 신비의 동굴을 발견한다. 동굴 어귀 정면에는 화과산 수렴동(水簾洞)이란 글자가 적혀져 있다. “동굴 속이 죽여준다, 우리 들어가 보자!”

 

한 원숭이가 동굴 속에서 말한다. “여보게 저승의 염라대왕에게 전혀 통제를 받지 않는 3 가지가 있는데 그게 뭔줄 아나?” “뭐꼬?” “부처와 신선, 그리고 신령님이다. 이 세 가지는 삶과 죽음을 뛰어넘어 하늘과 땅과 더불어 수명을 같이 한다더라.” “그 세 가지가 오데 살고 있다더노?” “인간세계 중에서도 가장 깊은 산속, 오래묵은 동굴 속에 살고 있다 카더라.” “오냐, 좋다, 동굴 속에 들어가 불로장생하는 법을 배워 언제 닥칠지 모를 염라대왕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야 겠다. 가자가자, 동굴 속으로…”

 

◆ 김광일과 안락문
○…1994년 독일의 영화감독 베르너 헤어조크와 촬영팀은 프랑스 남부 아르데슈에 위치한 쇼베 동굴 속으로 들어간다. 동굴 속에는 기원전 3만2000년에서 1만년 사이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벽화가 있다. 이들은 너비 60센티미터, 길이 400미터의 둥굴 미로를 따라가며 촬영을 감행했다. 동굴 속 벽화에는 4 개가 아닌 8개의 다리를 가진 동물들이 질주하고 있었다. 이 그림이 상징하고 있는 바는 뭘까?

 

동굴 속에는 수많은 종유석과 석순이 자라나고 분홍색 방해석이 가득차 있었다. 감독은 동굴 내부를 환상적으로 촬영해 마침내 한편의 영화를 만들어 일반인에게 공개했다. 제목은 ‘잃어버린 꿈의 동굴’.

 

배철현 서울대교수(종교학과)가 이 영화를 보고 소감을 밝혔다. “동굴 속에는 빛과 그림자, 밝음과 어둠이 있습니다. 이 동굴 영화를 본 이들은 이 거룩한 공간에서 저너머의 세계를 경험하는 동시에 황홀이라는 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침묵으로 가득 찬 이런 공간, 동굴 속에서 저자신 묵상하고 싶습니다”

 

○…연전, 임권택 감독이 만든 영화 ‘만다라’에서도 동굴 장면이 나온다. 한 승려가 견성(見性)을 획득하기 위해 동굴 속에서 용맹정진한다.
 

▲ 김광일 전 청와대 비서실장.     © 함양군민신문


김광일 변호사. 김영삼 정부시절 청와대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냈다. 말술도 마다하지 않았던 이였는데, 나이 70 전에 지병으로 별세했다. 김광일 변호사는 이승과 하직하기 전에 함양에 자주 왔었다. 그의 육성이다.

 

“인생이 참 허무하네, 부평초 같은 게 인생이라더니, 죽기 전에 내 지난 날을 반추하고 죄업이 없었나 되돌아 보고 싶네, 지리산 독바위 쪽에 올라가 그곳 굴(窟) 속에서 묵상이나 하고파, 함양에 왔소”

 

▲ 천상으로 가는 출입구 함양 독바위 안락문.     © 함양군민신문

 

김광일 변호사가 찾은 곳은 독바위 안락문(安樂門. 일명 통천문)이다.
 
함양군 휴천면에 위치해 있다. 등산코스로는 벽송사~와불산~독바위~모전동(11km)이다. 안락문 양옆으로 어마어마한 바위가 솟구쳐 있다. 한 발자국 앞에는 빛이요, 내부는 짙은 어둠이다. 누가 이름지었을까? 안락(安樂).
 
『법화경』에 ‘안락행품’이 있다. ‘안락행품’에 안락의 의미가 적혀져 있다. “안락행이란 언제나 편안한 마음, 즐거운 마음으로 스스로 행한다는 의미이다. 안락의 경지에서 부드럽고 온화하며, 착하고 순하며, 조급하여 성질 내지 말고 마음에 공포가 없으며, 대상에 집착하지 말라는 등의 경계를 일러준다”

 

김광일 변호사는 안락문에서 『법화경』 안락행품을 독경하며 몸과 마음을 추스렸다. “지혜있는 사람이면 이와같이 마음 닦아 안락행에 머무름이  나의 말과 같으리니 그 사람이 얻는 공덕 천만억겁 지내면 서산수로나 비유로도 다설할 수 없느니라”

 

◆사자굴과 원응 큰스님
 
○…연전 서상면에 사는 농부 박동성과 서암정사를 찾아 회주 원응스님을 친견했다. 스님은 사경(寫經)의 대가이시다. ‘사경’은 인도에서 석가모니의 말을 제자들이 산스크리트로 기록했던 것을 불법을 널리 전파하기 위해 다라나무 껍질에 베껴 쓴 패엽경에서 유래되었다. 중국·한국·일본에도 전해져 사경이 성행했다.
 
사경의 첫 번째 목적은 불법의 광선유포이다.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붓으로 일일이 필사했으나 9세기경 목판인쇄에 의한 판본경, 즉 인경이 제작된 이후 인경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사경은 장식경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두 번째 목적은 서사의 공덕이다. 불·법·승의 삼보 중 법보에 속하는 경전을 정성을 다해 베껴 쓰는 일은 불교도들에게는 선업으로 인식되었다. 『법화경』 같은 대승경전에서는 서사의 공덕을 설하고 사경을 권장했다.

 

원응 스님은 정사 내 사자굴(獅子窟)에서 사경을 하신다. 사자굴 주련에 獅子窟裏大睡漢時到一吼震四海 (사자굴 안에 큰 잠자는 놈이여 때가 이르러 크게 한번 부르짖으며 사해를 진동하리라) 글귀가 적혀져 있다.
 
“사경을 사자굴에 쓰는 특별한 까닭이라도 있습니까, 원응 예하?”

 

“사자는 최대의 맹수로서 ‘백수(百獸)의 왕(王)’ 아닌가? 백수의 왕의 기운을 받아 사경을 해야 사경 속에 원력이 담기는 거야” 

 

▲ 원응 스님이 사경하시는 사자굴.     © 함양군민신문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사자를 신의 불가사의한 힘과 왕의 위엄을 상징하는 동물로 생각하였으며, 아시리아나 그리스 사람들은 여신 옆에 사자를 그려 넣기도 하였다. 초기 그리스도교에서도 예수나 성인을 나타낼 때 사자가 함께 등장한다.
 
불교에서 사자는 흔히 두려움이 없고 모든 동물을 능히 조복시키는 백수의 왕으로 상징된다. 고대 인도에서는 사자를 제왕과 성인의 위력에 비유하였고, 불교 경전에서는 석가를 인중사자(人中獅子)라 칭했으며, 그 설법 또한 모든 희론을 멸한다고 해서 사자후(獅子吼)라고 했다.
 
사자굴은 구약 다니엘서에 첨가된 그리스어로 된 외경 부록 『벨과 용의 멸망사(The History of the Destruction of Bel and the Dragon)에도 등장한다.
 
유대인의 영웅 다니엘이 벨 신을 경배하지 않고 용을 죽여 사자굴 속에 갇히게 된다, 그러나 동굴 속의 사자는 그를 해치지 않는다. 다니엘은 7일 만에 사자굴에서 나오게 되고, 오히려 그의 대적자인 우상숭배자들이 후에 사자굴 속에 던져져 사자에게 먹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서암정사 사자굴 속에는 어떤 정령들이 숨어 있을까?

 

◆영통암과 서울 무당
○…천뢰전전용호(天雷奠奠龍虎) 교병일월낙조조 (交兵日月落照照) 아분명원거원래 (我分明遠去遠來) .접아호령조도천 (接我號令調到天) 병천장지병지장 (兵天將地兵地將) 신병신장관병정 (神兵神將官兵井) 장오뢰신장부도 (將五雷神將符到) 봉행급급여율령 (奉行急急如律令)….

 

지리산 백무동 가는 길에 고불사 조금 못 가서 언덕빼기에 영통암이 있다. 전국 내노라하는 무당들의 기도터이다. 모년모월모일, 서울 종로3가 예언의 집 문수보살 일행이 이곳에서 작두춤을 춘다길래 찾아갔다. 문수보살이 동굴 속에 젯상을 차려놓고 징을 두드린다.
 
세찬 논보라에도 꺼지않는 촛불, 동굴 속 신령을 부르는 징소리, 동굴 속 신령이 찾아온 걸까? 마침내 문수보살 동공이 풀리며 땅에 쓰러진다.
 
보살이 신령에게 자신의 혼(魂)을 떠 넘긴다. 한바탕 굿이 끝났다. 보살에게 물어봤다. “영통암 동굴 속에 누가 있소?” “예. 저 속에 해와 달의 정기를 가득 받은 지리산 동굴신령님이 계시죠. 불교에서는 극락세상을 열어 모든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륵불이라고 하는데 우리 무속에서는 신령님, 신장이라고 합니다. 신장을 부를 때 외는 주문을 천병천장주(天兵天將呪)라고 합니다. 신장청(神將請:신장을 청하는 주문)을 외기도 하구요. 주문은 보통 3번 이상 7번을 연달아 욉니다. 정성을 다하면 신장의 감응이 다가 옵니다”

 

종교인 특히 무속인들이 동굴을 선호하는 이유는 뭘까?
 
조용헌(동양학자)에 따르면 “동굴은 사방이 암벽으로 되어 있어 기운이 강하게 방사한다. 평지의 일반 주택에 비해서 동굴은 압력밥솥과 같이 강한 지자기(地磁氣)가 응축돼 있다. 강한 지자기가 방출되는 곳에 거주하면 인체의 혈액을 따라 지자기가 뇌세포로 유입되기 때문에 종교체험을 하게 된다. 그래서 도사나 승려들은 동굴을 선호했다”


◆김경두 면장과 옥문굴
○…2011년 여름 김경두 안의면장(당시)과 필자, 김성 전 레이디경향 편집장, 이관일 문화비평가 등이 안의유람에 나섰다. “(김 면장의 말) 함양군 안의면 용추계곡 가는 길에 옥문굴(玉門窟)이 있소. 우리마을 사람들 옥문이라해서, 외설스럽게 생각하고 있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합니다. 잘 연구개발하몬 안의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될 것 같다 생각하오. 한번 둘러보시고 스토리텔링 좀 해보시구려” “그럼요, 북한산에 가면 여성봉(송추)이 있습니다. 등산객들 일부러 여성봉을 경유, 북한산에 가려고 바글바글 합니다. 지금 당장 옥문굴, 한번 가 봅시다”

 

안의면의 옥문굴. 과연, 여성의 신비 그자체이다.
 

▲ 김경두 안의면장(당시)이 옥문굴을 소개하고 있다.     © 함양군민신문


주변에 인가가 없으니 고요와 정적의 미도 뛰어나다. 안의 옥문굴을 바라보면서 옥문의 주인공 여인의 모습을 유추해본다. 막 돋아난 새싹처럼 부드러운 손, 엉긴 기름처럼 매끄러운 피부, 매미처럼 넓은 이마, 복숭아 뺨같은 뺨, 앵두같은 입술, 아름다운 눈망울이 또랑또랑! 옥문굴을 바라노노라니 마음이 설렌다. 옥문굴 앞에 툇마루 주막집을 지어놓고 월하독작(月下獨酌)하고픈 마음이 절로 인다. 한국판 영화 ‘천녀유혼’ 한 편 찍고 싶다.
 
시나리오 내용은 아래와 같다.
 
“조선 철종시대. 서역의 대국사로 금불상을 운반하기 위해 고행길을 떠나는 두 스님 제자 ‘만월’과 스승 ‘백운 대사’는 안의현에 도착한다. 안의현내(內)로 들어선 만월과 백운 대사는  금불상을 노리는 자가 있을까봐, 뭇 인간들이 두려워하는 안의 옥문굴 속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다. 동굴 속에는 인간들의 정혈을 빨아먹는 귀신들의 무리 중 착한 마음을 가진 귀신 ‘소탁’이 살았다. 백운 대사 눈에는 소탁이 보이 않았지만 만월 눈에는 미인 귀신 소탁이 보였다. 이로써 소탁과 만월 사이에 이루지 못할 귀인간(鬼人間) 간의 사랑 감정이 싹트게 되는데…”

 

망언다사(妄言多謝). 필자의 구라에, 김경두 면장은 폭소를 터트리며 “제가 영화를 제작할 쩐주를 찾아오겠습니다, 당장 한 편 만들어 봅시다! 감독은 누구로 할까요?”

 

“배창호 감독 고향이 함양군 수동면이라고 합디다. 배 감독이 애정물을 아주 잘 만듭니다요”

 

그는 고(故) 최인호 소설가가 쓴 사극 시나리오 ‘황진이’를 연출한 바 있다. 안성기, 장미희 주연. 배 감독에게 “안의 옥문(玉門) 천녀유혼을 만들어라” 하면 끝내주게 만들어 낼 것이다.
 
김성 전 레이디경향 편집장이 옥문굴을 유심히 바라보며 한 마디한다.
 
“동굴은 이승과 저승의 중간지점, 또 여자의 자궁으로 상징됩니다. 중국 좡족 창세여신 이름이 무리우쟈(姆六甲)인데요, 엄청난 거인이었습니다. 무리우쟈 생식기 역시 동굴처럼 엄청나게 커서 비바람이 몰아치면 모든 동물들이 모두, 동굴처럼 생긴 창세여신 생식기 속으로 들어가 숨었다고 하지요. 안의면 옥문굴을 한국판, 아니, 안의판, 좡족 무리우쟈 여신으로 변환시켜 스토리텔링 한 번 해보고 싶은 마음이 꿀떡 같네요”
 

구본갑|논설위원 busan7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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