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과 함양출신 박상복 화가, 이색 만남

함양군민신문 | 입력 : 2016/12/13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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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순조1년 조선 장안에 피바람이 불었다. 1800년 순조는 즉위하자마자 천주교와 남인들을 탄압했다. 천주교에 관여했던 남인들이 대거 체포되어 처형 당했다.


 남인 정약종, 최창현 이승훈이 한양 서소문 밖에서 목아 날아갔다. 정약전, 다산 정약용 형제는 경상도 장기로 유배되었다가 다시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된다. 다산의 강진유배생활은 혹독했다. 강진 사람들은 다산을 나라의 반역자라해서 배척했다. 죄인(다산)이 제 집에 들어올까봐 저마다 대문을 꽁꽁 닫아걸었다. 주리고 지친 몸 다산은 어느 주막집 평상에 풀썩 주저앉으며 주막집 노파에게 “아무데도 갈 데가 없는 몸이오, 제발 소인을 살려주시오” 노파는 측은지심에서 주막 봉놋방 하나를 내줬다.


 강진으로 유배 온 지 1년 후, 1802년, 다산은 주막 봉놋방에 작은 서당을 열었다. 아전의 자식 몇이 다산서당에 와 공부를 했다. 다산은 이 학동들에게 사람의 도리를 친절히 일깨워주고 글공부를 시켰다. 다산은 주막집 서당 학동들 가운데 한 더벅머리를 유심히 관찰했다.


 어느날, 공부를 마친 학동들이 각자 집으로 돌아갈 때 다산은, 더벅머리에게 “너는 좀 남거라”라고 말했다. 다산이 더벅머리에게 말했다. “공부를 열심 해야 한다, 그래야 큰 사람이 될 수 있다” 더벅머리가 어렵게 입을 연다. “저는 아둔합니다”


 “둔하다고? 공부는 꼭 너 같은 사람이 해야 한다. 송곳은 구멍을 쉬 뚫어도 곧 다시 막히고 만다. 둔탁한 끝으로는 구멍을 뚫기가 쉽지 않지만 계속 들이파면 구멍이 뚫리게 된다. 뚫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한번 구멍이 뻥 뚫리면 절대로 막히는 법이 없다…구멍을 어떻게 뚫어야 할까? 부지런히 하면 된다. 어떻게 해야 부지런히 할 수 있느냐? 마음을 확고하게 다 잡으면 된다. 내가 너를 잘 지도해 줄 터이니 공부 열심히 하여라…”


 더벅머리는 스승 다산의 지도하에 과골삼천(顆骨三穿:공부를 하기 위해 바닥에 닿은 복사뼈가 3번이나 구멍이 남), 학문에 열중했다.


 더벅머리 소년의 이름은 황상. 다산이 가장 아낀 단 한사람의 제자다. 황상은 후일 조선 최고의 명 문장가로 이름을 날렸다. 황상과 스승 다산의 애틋한 사연은 정민 교수가 쓴 『삶을 바꾼 만남…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문학동네 펴냄)에 자세히 나와 있다.


 다산과 같은 멘토가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황상은 한갓 시골촌부로 한 평생을 보내고 말았을 것이다. 김무성 선친 고향은 함양이다. 이런 연고로 김무성은 함양 사람들과 두터운 친분을 맺고 있다. 다산이 그렇게 했듯이 김무성도 함양 후학들의 멘토 역할을 하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 박상호 전 재창원향우회장이 인연을 맺어줬다

 ○…지난 8월 함양군 안의면 안심마을에서 여주축제가 열렸다. 김무성 새누리당 전 당대표(이하 경칭생략)가 축제장을 방문했다. 김무성과 관련된 기사꺼리라도 있을까 싶어, 안심마을을 찾았다. 그때 김무성은 민생투어 차 전국을 돌고 있었다. 밀짚모자를 쓴 김무성의 얼굴에 수염이 가득했다. “(김무성의 말) 이기 여주라는 기가? 희한하게 생겼네, 울퉁불퉁 참말로 거시기하게 생겼구먼, 하하하”


 이해근 안의새마을금고 전무가 “여주를 요리하면 기가 막힙니다, 가수 양희은이 말에 의하면 일본에서는 여주가 송로버섯보다 더 죽인다 컵니다. 중국 고사에 따르면 양귀비가 여주킬러랍니다, 흐흐” “오호 그래요, (비서관에게) 여주 저거 좀 사자, 집에 가서 한번 묵어보게…” “예, 알았습니다”


 임재구 군의장, 박상호 전 재창원향우회장 일행이 여주로 만든 파전과 안의막걸리를 김무성에게 대령한다. 김무성, 한잔 캬 들이켰다, 그리곤 대중 속으로 시선을 돌아보더니만 “어? 박상복 화백 여기 우찐 일이고? 함양 산수화 그리려고 고향에 왔나?”라고 말했다.


 대중들 꽁무니에 서 있던 박상복 화백이 주뼛댔다.


 “저 친구 그림 정말 좋아, 그림 속에 기가 팍팍 흘러요, 이리와서, 막걸리 한잔 하소”


 박상복 화백이 김무성의 주전자를 받는다. 김무성이 큰 목소리로 “박 화백이 그린 그림 중에 거연정(居然亭, 경남 유형문화재 제433호)이 제일 좋더라. 그거 좀 싸게 팔 수 없나? 하하하”


 박상복 화백, (필자로서는) 처음 보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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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무성과 무슨 교우관계를 맺고 있을까? 그날 박 화백을 취재할 경황이 없어 두 사람 간의 스토리텔링을 체킹하지 못했다.


 세월이 흘러 강선식 전 창원향우회장과 저자거리에서 대포를 한 잔 하면서 그이의 프로필을 알게 되었다.


 “응, 박상복 화가, 유림면 내고향 사람이지, 호는 함산(咸山), 초등학교 한참 후배요. 대궁초등학교. 경남대학교 사범대학 미술교육과와 교육대학원을 나왔소. 향우회 일에 열심. 전업작가. 왜 그 친구 취재 한번 해 보실려고? 지금 전화해 만나게 해 주까?”


 해서, 그의 작업실에 가게 되었다. 창원시 의창구 창이대로 283(봉곡동) 반지하실에 그의 아뜨리에가 있었다. 아뜨리에는 초토화된 상태. 박상복 화백이 객들에게 하소연을 한다. “지난 10월 태풍 차바 240㎜ 폭우 때문에 피해막심합니다. 그림이 몽땅 물에 잠겨, 거의 공황상태입니다. 허허”


 그래도 몇 점 그림은 남아있어 천천히 박 화백의 그림을 감상했다. 함양을 테마로 한 그림들이 여럿 있다. 거연정과 상림공원 그림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거연정과 상림의 정경은 사람의 흔적을 일체 배제한 채 담담한 어조로 담고 있다. 필법(筆法)과 묵법(墨法)이 예사롭지 않다. 묵법에는 담묵(淡墨), 습묵(濕墨), 농묵(濃墨), 초묵(焦墨), 숙묵(宿墨) 등이 있다. 박 화백은 초묵과 농묵 처리하는 솜씨가 대단하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먹이 가장 다루기 어렵다. 담묵으로 전반적인 색을 입히고 나서 초묵과 농묵으로 경치의 원근(遠近)을 구분한다.


 거연정(居然亭) 그림을 유심히 감상했다. 그림 속 강물 흐름의 변화를 통해 그 안에 감겨 있는 함축적인 의미가 점점 더 깊어져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일전 안의여주축제 때 박 화백을 멀리서 뵈었습니다. 그때 김무성 당대표가 박 화백에게 농(弄)을 던지던데 서로 아주 친한가 보지요?


 “그냥, 몇 번 뵌 적이 있을 뿐, 뭐, 그다지…”


 -웬걸요, (김무성 대표가) 박 화백의 작품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말을 하던데. 그래, 어떻게 알게 되었습니까?


 “평범합니다. 향우회 때문에 알게 되었습니다. 대처에 나와 살다보면 고향이 그립고, 또 고향사람 만나면 정답지 않습니까? 언젠가 향우회 행사에 갔더니 박상호 전 재창원향우회장이 박상복 자네 그림 한 점 사고 싶은데 착한 가격으로 하나 도고(다오) 그래요, 고향선배님 부탁인지라 제 딴에는 퍽 아끼는 그림을 줬지요. 향우회가 좋고 고향 선배님들이 참 좋습디다. 박 회장이 이른바 고향 유력인사들을 소개해주더군요. 그래서 양재생 은산해운 회장, 이경신 부산향우회장님을 알게 되었지요. 두 분께서는 저의 그림을 보고, 그림이 좋구나, 절차탁마 더 연마, 세상사람들이 깜짝 놀랄 수작(秀作)을 창작하라, 용기를 불어넣어주더군요. 어느날 이 분들이 저에게 김무성 당대표를 소개해주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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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생 은산해운 회장 등을 이끌고 화실 방문

 한때, 차기대권주자로서 톱을 달리던 김무성과 함양출신 작가와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다산이 더벅머리 황상을 유심히 관찰한 후 그의 스승을 자처했듯이, 김무성도, 박상복의 그림을 보고나서 작가 박상복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다.


 김무성은 그림에 조예가 깊다. 공사다망한 정치판에서 벗어나 즐겨 미술관을 찾아 그림 삼매경에 빠져들곤 한다. 광주 비엔날레 ‘마니아’이기도 한다. 최근 한국미술협회가 주최한 ‘2016 대한민국 미술인의 날’ 행사에 참석,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창작하는 예술가들을 독려하기도 했다.


 여기 한 장의 사진이 있다. 박상복 화백 ‘아뜨리에’에 양재생 은산해운 회장, 이경신 부산향우회장 그리고 김무성 세 사람이 박상복 화백의 그림 그리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세 분 모두 부산에 연고가 있는데 일부러 창원에 와 저를 격려 해줬습니다. 작가로서는 무한한 영광이지요. 이곳에서 김무성 대표는 자신이 생각하는 미술세계를 이야기하더군요. 대저 어떤 그림이 좋은 것이냐? 우선 그림 속에 정서적(emotional) 감동이 있어야 겠지? 그다음엔 영성적(spiritual) 울림이 있어야 좋은 그림이야! 박 화백 자네 면전에서 이런 말 하면 참 거시기한데 자네 그림, 참 좋네. 일화수진혼몽지외(一畵收盡鴻蒙之外) 기운이 있어!”


 一畵收盡鴻蒙之外…한 획으로 허공의 경계를 나눈다는 뜻이다.


 이어 김무성은 박상복에게 이런 말을 했다. “경남 산청군이 말입니다, 이재근 군수시절에  이호신 화가를 선청으로 불러들여 산청의 진경산수를 그리게 했지요. 함양군도 박상복을 보쌈해 함양의 진경산수를 그리게 할 필요가 있어요”


 김무성의 말 속에 후학에 대한 애정이 가득하다.   


 필자도 김무성의 말에 동감이다. 함양군 곳곳에 절경들이 있다. 함양은 산수가 수려하고 자연경관이 기이하여 이른바 명산대천의 집산지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절경들을 화폭에 옮겨 이 그림으로 달력과 펜시상품을 만들면 함양의 품격이 한층 격상할 것이다.


 김무성은 부친때까지 함양사람이고, 자신은 함양서 산 적이 없다. 그러나 스스로 “내 마음속의 고향은 함양이라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유독 함양사람들과 친근하게 다가가고 있다. 가끔 함양 농산물 홍보대사도 되어 준다. 김경회씨 삼밭에는 3년~12년생 산양삼이 6만평 대지 위에 300만 뿌리가 건강하게 자라고 있고, 한 쪽에서는 250만 뿌리 묘종이 성장하고 있다.


산양삼(wood-cultivated ginseng)은 천종 씨앗이나 자연삼 씨앗을 채취, 자연의 깊은 산림 속에 자연 방임해 키우는 걸 말한다.


 김경회씨 산양삼은 고려삼으로써 뛰어난 약성을 자랑한다. 중국의 명의 산뇌(山雷) 장수완이 쓴 본초정의(本草正義)에 따르면 고려삼은 그 기미(氣味)가 진하고 색도 중탁(重濁)하며 비기허한(脾氣虛寒) 진양쇠약(眞陽衰弱) 여러 증(證)에 사용하여 매우 빠르게 효과를 보는 약재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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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상면 김경회 농가에 가 김 농부가 생산한 산양삼을 씹어먹으며 ”장수(長壽)만세!”를 외친다.


 김무성의 함양사랑에 함양사람들도 그 무엇을 보답해야 하지 않겠는가?


 김무성 가족들은 지난 5월 서울에 있던 부친 김용주 전 전남방직 회장 묘소를 경남 함양군 유림면 유평리로 옮겼다. 필자는 그의 부친묘 형국을 살펴보기 위해 모월모일 유림면 유평리 묘소를 찾았다. 동행한 이는 유림면 옥산리 사는 농부 김형옥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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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토(五色土)가 나오는, 풍수지리학적으로 명당에 해당하는 자리라고 카데요”


묘소에서 산아래를 바라보니 더멀리 엄천강이 유유히 흐른다. 중국 소동파의 송사 ‘대강동거 량도진 천고풍류인물(大江東去 浪淘盡 千古風流人物:장강은 동으로 흘러 거센 물결이 천고의 영웅으로 하여금 호연지기를 갖게 하네)’가 떠오른다.


 “보소, 구 기자(필자) 욜로 오보소. 와따매 여기가 진짜 명당은 명당인갑다. 멧돼지 놈들이 묘 앞 흙을 파놓은 거 좀 보소. 짐승들은 말이요, 명당을 용케 알고 이렇게 와 흙을 판다니까. 보기 흉하니 내가 도로 원위치시켜놔야 겠네”하며 장화발로 짐승들이 파놓은 흙을 원위치시킨다. 보기에 참 아름답다.


 “김무성 대표가 우리 함양을 많이많이 사랑해주고 있는데, 우리도 이에 대해 보답을 해야할 거 아뇨? 가끔가끔 시간 나면 여기에 와 묘역 정돈도 좀 해줘야 쓰겠네 흐흐흐”


 최순실 박근혜 게이트 정치스캔들이 나라를 어지럽게 하고 있다. 이럴 시점에, 김무성과 함양군민 사이에 오가는 기브엔테이크give-and-take 스토리텔링은 필자에게 영화 한 편 찍고 싶은 충동감을 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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