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지시하고 정부는 돌 던지는 시늉만
유아들이 많이 읽는 책 중에 이솝우화가 있다.
이솝우화 가운데 무심코 연못에 돌 던지는 아이의 이야기가 있다.
돌멩이에 연못에 사는 개구리들은 놀라 도망치게 되니 ‘미물(微物)에게라도 놀라게 하는 것은 틀린 것이다’라는 교훈을 주는 우화다.
지난달 10일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미세먼지 문제는 국민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협하는 중차대한 문제로, 국가적 차원에서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이 나라의 중앙정부 17곳 중 한 곳이 이 이야기를 패러디하고 있다.
돌멩이 대신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다.
현미경으로 본 초미세먼지는 머리카락 굵기의 30분의 1보다도 가는 아주 작은 입자다.
미세먼지를 배출하는 것도 공장과 화력발전소, 자동차, 공사장까지 여러 가지다.
그런데 환경부는 이 가운데 국내 경유차가 주범이니 경유 값을 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경부는 2018년 교통·에너지·환경세 폐지와 개별소비세 부과에 맞춰 경유 값을 인상하고, 휘발유 값을 조정하는 안을 제시했다.
경유를 원료로 사용하는 버스 트럭 등에서 미세먼지를 많이 배출한다는 것이 명분이다.
과연 경유 값을 올리면 미세먼지가 확 줄어들까.
이달 초 MBC보도다.
지난 일주일 한반도를 뒤덮은 미세먼지와 대기 흐름을 위성 영상으로 들여다보니 한반도 북쪽 저기압이 비구름뿐 아니라 중국 공업지대의 미세먼지를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여 서해와 한반도로 토해냈다.
이후에도 잿빛 미세먼지가 수시로 남북한으로 유입되는 모습이 인공위성에서 포착됐다.
실제로 자동차나 공장이 거의 없어 중국 미세먼지 유입의 척도가 되는 서해 백령도의 초미세먼지 농도가 평소의 너덧 배 수준인 100마이크로그램까지 넘나든 일이 일주일새 두세 차례나 된다.
중금속인 납도, 평소의 7배까지 치솟았다.
고농도 미세먼지는 중국이 일차적인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그럼 국내 미세먼지 발생의 주범은 무엇일까.
환경부의 최근 공식통계인 ‘2012년 대기오염물질 배출량’을 보면, 수도권은 초미세먼지의 40% 이상을 자동차가 배출하는데 환경부는 모두 경유차에서 나오는 걸로 본다.
하지만 공장이 많은 충남과 경북은 자동차가 차지하는 비율이 각각 5%, 7%에 불과하고, 전국 평균은 15% 남짓이다.
전국 배출량의 절반 이상은 공장이 원인이고, 철도나 선박 같은 다른 교통수단에서 나오는 초미세먼지가 자동차보다 더 많다.
그럼 자동차 배출량은 어떨까.
자동차 배출량은 2003년 2만8000톤에서 2012년 1만3000톤으로 절반 넘게 줄었다.
환경부의 발표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적어 친환경차로 분류되던 경유차가 하루아침에 미세먼지의 주범이 됐다.
그러나 같은 기간 제조업 공장은 배출량이 다섯 배 넘게 폭증했다.
공사장 비산먼지와 타이어 마모, 중국 발 먼지까지 합하면 유독 경유차가 초미세먼지 주범이라는 환경부 분석은 설득력이 약하다는 지적이다.
고려대 이종태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는 “어느 정도 요금을 이제 인상시켰을 때, 그로 인해서 어느 정도의 대기질 개선이 있을지 특히 미세먼지와 관련해서, 이런 과학적인 증거가 전혀 부재한 상태다”고 했다.
그렇지만 환경당국은 경유차 실제 배출량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 ‘플러스 알파’가 있다며 경유차에 집중하고 있다.
국립환경과학원 홍유덕 과장은 “경유 자동차 부분에서 실외에서 주행했을 때 실내보다 (미세먼지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다소 저평가되지 않았나 이렇게 판단을 하고 있고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이 작성한 ‘지자체 도로이동오염원 배출량 산정 보고서’를 보면 미세먼지 기초통계가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지 알 수 있다.
종전의 통계는 차량 등록대수만을 토대로 미세먼지 및 질소산화물을 계산한 결과를 담았다.
그러나 이 계산법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차량 등록대수와 실제 통행량이 다르기 때문이다.
차량이 자주 통행하는 지역의 미세먼지 배출량이 많을 수밖에 없다.
연구원들이 이 통행량 자료를 근거로 통계 값을 바로 잡았다.
그 결과 수도권을 통행하는 차량이 내뿜는 미세먼지 및 질소산화물의 배출량은 기존 통계보다 더 늘어났다.
미세먼지는 서울은 7.3% 인천은 18.95%, 질소산화물은 서울이 12.12%, 인천은 19.83% 더 오염됐다.
기초통계부터 다르니 시민들의 체감도 차이가 나고, 그에 따라 정부에 대한 불신도 생기는 것이다.
이달 1일 정부가 내놓은 방안은 학원통학차, 마을버스, 이삿짐 차량 등이 생활형 차량이며 주민들의 건강에 직접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는 판단에 화물운송 트럭보다 먼저 매연저감장치를 부착키로 했다.
더 큰 배출원인 중국과 국내 공장, 비산먼지 등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도 함께 나와야 실질적으로 미세먼지를 줄일 수 있을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었다.
또한 국회와 기획재정부는 경유값 인상은 곧 세금 인상이라는 논리로 반대했다.
환경단체들은 정부가 미세먼지 저감책을 마련하기는커녕 석탄화력발전소를 늘려 미세먼지 배출량을 증가시키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비판을 제기했다.
지난달 31일 환경운동연합은 “정부가 40년 넘은 노후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한다는 계획은 미봉책이자 보여주기식 대책에 불과하다”는 논평을 냈다.
이 단체는 자체 분석 결과 새롭게 추가될 석탄화력발전의 용량이 폐쇄될 노후 석탄화력발전 설비의 5배 수준에 달한다고 밝혔다.
2030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 11기 설비를 폐쇄하더라도 같은 기간 새롭게 가동할 설비는 20기에 이른다는 것이다.
설비용량만 따지면 새롭게 추가할 설비용량이 폐쇄할 설비의 5배 수준이다.
현재 국내 석탄화력발전소는 총 53기로 11기는 가동된 지 30년이 넘었고, 3기는 40년이 지났다.
다음날 정부는 40년이 넘은 석탄화력발전소의 가동을 중단시키거나 천연가스 발전소로 바꾸고 효율이 떨어지는 노후 발전소에는 오염물질 저감시설 설치를 검토했다.
여기까지는 몸 풀기다.
지난달 23일 환경부가 발표한 ‘실내 미세먼지 조사’에 따르면 밀폐된 공간에서 고등어를 구웠을 때 미세먼지 농도가 세제곱미터 당 2530㎍까지 치솟았다.
대기 미세먼지 농도 ‘매우 나쁨’에 해당하는 90㎍의 28배가 넘는 수치다.
초미세먼지(PM2.5)도 ㎥당 2290㎍이나 배출됐다.
이어 삼겹살, 계란프라이 순으로 나타났다.
삼겹살을 구웠을 때는 미세먼지가 ㎥당 1580㎍, 초미세먼지가 1360㎍이 나왔고 계란프라이를 할 때도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가 각각 1160㎍/㎥, 1130㎍/㎥씩 발생했다.
그래서 서울시민과 경기도민 등은 산소 캔을 사서 숨을 쉬고, 부산의 대형마트에선 고등어 매출이 떨어져 수산업계는 한숨만 쉬고 있다.
함양 축산업자들도 흑돼지매출 하락과 경유 값 인상을 두고 걱정이 많았다.
음식조리에 대한 환경부의 답변은 “요리 후에 창문을 10분~15분 정도 열면 미세먼지와 같은 오염물질이 90% 이상 없어지기 때문에 꼭 환기를 해주시는 것이 좋습니다”다.
환기만 시키면 되는 걸 환경부는 왜 이렇게 했을까?
지난달 10일의 박 대통령의 언급 때문일까?
대통령 특단의 대책이 서민들 자동차 연료비 인상과 아이들이 쉽게 먹는 계란프라이까지 신경 쓰게 만들고 있다.
국민생선 고등어, 국민고기 삼겹살도 숨을 쉬기 위해선 먹지 말아야 한다.
함양읍에는 쇠를 깎고 못을 치는 소리가 자주 들린다.
읍민들은 이것에도 미세먼지는 없을까? 란 생각이 들 것이다.
그리고 지난 3일 정부가 관계부처 합동으로 특별대책을 확정해 발표했다.
그런데 ‘국민 안전과 건강 보호를 위한다’는 수식어만 화려할 뿐, 내용은 전혀 특별한 게 없다.
“돌 던져”란 소리에 놀란 개구리들에게 돌멩이는 날아오지 않았다.
천만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