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의 전설 - 비네바위의 눈물 ‘떠돌이 화공과 양가집 규수의 비련’

함양군민신문 | 입력 : 2016/06/01 [23:15]
▲     © 함양군민신문

 

 

백전면 경백리 능경마을 서쪽에는 비네바위(비녀바위)라는 벼랑이 있고 그 벼랑 아래는 소()가 있다.

 

그런데 이 비네바위에는 칠월 칠석이 되면 물방울이 생겨나와 밑의 소로 뚝뚝 떨어진다고 한다.

 

사람들이 그 물방울을 옥이라는 여인의 눈물이라고 전해오고 있다.

 

옛날에 이 고을에 옥이라는 처녀가 살고 있었다.

 

그녀는 김진사의 무남독녀였기에 그야말로 옥이야 금이야 귀하게 자랐다.

 

옥이는 나이가 들면서 반개도화처럼 아름다운 얼굴과 숲속의 샘처럼 맑은 눈동자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목소리는 옥구슬이 구르는 것처럼 향기롭고 은은하여 인근의 뭇총각들로 하여금 밤마다 터지는 한숨으로 잠 못이루게 하였다.

 

옥이의 부모들이 옥이의 혼처를 물색하고 있었고 어느정도 가닥을 잡고 있었다. 친척들은 옥이에게 넌지시 농을 걸곤 하였다.

 

옥아, 어서 시집가고 싶지 않니?”

 

난 시집 같은 것 안가요” “아이 몰라요하고 수줍어 하였다.

 

그러던 어느 해 오월 단오절이었다.

 

옥이도 흑단같은 머리를 창포로 감고 꽃놀이를 하고 그네뛰기를 하기도 하는 등 즐거움에 취한 하루였다.

 

그녀는 하늘 높이 치마폭을 휘날리면서 시원스럽게 그네를 타고 있었다.

 

그때 옥이는 그네를 타면서 저 멀리서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눈길을 만날 수가 있었다. 짙은 구렛나루에 아무렇게나 비끌어 맨 머리로 봐서 옥이와는 신분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지만 범상한 인물은 아닌것처럼 보였다.

 

굵직한 얼굴선과 듬직한 체구 때문인지 당당하고 늠름한 모습마저 풍기고 있었다.

 

옥이는 그 사내의 호기심 어린 눈길을 감당하지 못하고 주춤하는동안 그만 그네줄을 놓아 밑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녀는 동무들의 부축을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옥이는 부모님이 걱정하실까 봐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행동했지만 사지가 쑤시고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몸살감기를 앓는 것처럼 한기와 통증을 느끼며 몸져 눕게 되었다.

 

그런데 비몽사몽간 꿈을 꾸게 되었는데 꿈 속에서 그네 탈 때, 그 깊고 그윽한 눈길을 보내던 사내가 나타나 손을 잡고 숲길을 거닐며 즐겁게 뛰놀다 저녁이 되어 헤어질 때 짧은 이별을 아쉬워하며 눈물을 흘린 꿈이었다.

 

꿈이라기엔 너무나도 생생하고 아쉬운 꿈이었다.

 

며칠 후 옥이는 병상에서 일어나 몸을 추스르고 이불깃에 수를 놓고 있었다.

 

옥이는 아직 모르고 있었지만 사실 그녀의 부모들은 그의 혼처를 정해놓고 있었고 길일을 택해 혼례를 치룰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옥이가 수를 놓고 있는 것도 사실은 결혼 예물이 될 것이었다.

 

그녀가 땅거미가 질 무렵이 되어 수놓기를 마치고 바람을 쏘일려고 마당에 나왔을 때 꿈 속에 나타나 그녀와 손을 잡고 숲속을 거닐던 그 사내가 그녀의 집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옥이는 얼른 자리를 피해 그녀의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녀의 가슴 속에서는 북을 치는 것처럼 마냥 쿵쿵거리고 있었고 방의 이쪽저쪽을 오가며 어찌할 줄 몰랐다.

 

옥이는 그 사내가 바로 자기방으로 뛰어들까 봐 겁도 났다.

 

나으리, 나으리 계시옵니까?” 하는 그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옥이의 아버지 김진사가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냐?”

 

예 소인은 온 누리를 떠돌며 가끔 초상화를 그려주는 화공이옵니다.

 

황송하오나 소인이 비록 천한 몸일 지라도 나으리의 지붕 밑에서 밤이슬을 피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 화공에게서는 천한 자의 비굴한 아부의 목소리가 아니라 어딘가 모르게 의젓한 품위가 느껴지는 언행이었다.

 

그림을 그리는 화공 치고는 천박하지 않아 끌리는 구석이 있구나. 그래 고향이 어디인가?”

 

비천한 소인에게 어찌 고향이 있겠사옵니까? 소인은 본디 출생지도 모르고 나이도 모르는 한낱 떠돌이 화공에 불과하옵니다

 

허허, 그래

 

김진사가 화공의 청을 허락하고 하인 곰쇠를 시켜 여장을 풀도록 하였다.

화공은 행랑채에서 저녁밥을 얻어먹고 곰쇠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였다.

낯선 사람에 대한 친근감을 갖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곰쇠를 구슬려 옥이와 연을 닿게 하기 위해서였다.

 

화공은 떠돌이 삶을 이야기 했고 떠돌이 삶에서 겪었던 우스갯소리 등을 걸찍한 입담으로 하여 곰쇠로부터 인정을 받게 하였다.

 

이렇게 하여 화공은 곰쇠와 친근한 지기처럼 가깝게 만든 후 겉망에서 꾸러미를 꺼내 내일 아침 일찍 아무도 모르게 옥이에게 전해줄 것을 부탁하였다.

 

곰쇠가 혹시나 뒤탈이 있을까하여 주저하자 엽전꾸러미를 하나 건너주니 허락하였다.

 

한편 옥이는 밤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바람이 불어 문풍지를 흔들때면 마치 화공이 그녀 자신에게로 찾아오는 것만 같아 마음이 초조 하였다. 내일 아침이 오면 그 사내가 어디론가 훌쩍 떠나면 어쩌나 하여 더욱 그리워 하였다.

 

옥이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아침 세수를 하고 방으로 들어갈려고할 때 곰쇠가 다가와 조그만한 꾸러미를 건네주었다.

 

그 꾸러미는 다름 아닌 아름다운 선녀가 그네를 타고 있는 그림이었다.

 

그 선녀는 다름아닌 옥이 자신의 모습임을 알고 부끄럽고 감사하기도 하여 마음이 안절부절하였다.

 

화공은 조반을 먹고 김진사를 찾아뵈었다.

 

화공같은 초라한 신분으로는 양반 앞에 선뜻 나서기 어려운 일이었으나 화공은 그런 것에 얽매여 전전긍긍할 사람이 아니었다.

 

또한 화공은 마음에 먹은 뜻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숙식을 취하고 곧장 어디론가 떠나서는 아니될 일이었다.

 

나으리, 소인은 미천한 재주를 가졌사옵니다만 나으리께서 허락만 하신다면 나으리의 초상화를 그려드릴까 하옵니다

 

초상화? 그래 그대는 얼마동안이나 초상화를 그렸느냐?”

 

몇 년 되옵니다

 

그래, 난생 처음 해 보는 일이라 쑥스러움도 없진 않네만 그대의 용한 재주를 한번 구경 해 봄세

 

이렇게 하여 화공은 김진사의 초상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화공은 김진사의 초상화를 밑그림만 그릴 뿐 더 이상 그리지 않았다.

 

화공은 김진사집에 하루라도 더 머물면서 옥이를 만나야 하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래서 빨리 그릴 수 있는 초상화였지만 일부러 시간을 벌기 위해서 꾸물대었다.

 

그러나 김진사는 이 사실을 알 리 없었다.

 

김진사는 초상화의 밑그림만으로도 화공의 뛰어난 재주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초상화를 더 이상 그리지 않고 내일로 미루는고?”

 

, 나으리 그것은 마치 술과도 같은 것이옵니다.

 

말인즉 술이 알맞게 익기 위해서 뜸을 들이는 이치와 같다 아겠습니다.

 

짧은 시간으로는 초상화 속에 충분한 얼과 생기를 불어넣을 수 없사옵니다.

 

또한 소인은 스승님에게 그림을 배우는 동안과 많은 초상화를 그려오는 동안 관상에 대해 터득한 바가 있습니다. 소인이 보기에는 나으리의 관상은 귀상이 아닐 수 없사옵니다. 그러한 나으리의 모습을 감히 함부로 그릴 수 있겠습니까?”

 

화공은 나이에 비해 김진사보다 한 수 높은 생각으로 진사를 놀렸다.

 

그것은 옥이와 연을 닿게 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그래 그렇다면 내일 다시 시작하지. 오늘은 그대와 술잔을 기울이고 싶으이. 사양말게나

 

과분한 대접에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소인이 어찌 나으리의 뜻을 버리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화공은 김진사와 술잔을 기울이며 서로의 마음을 좁히려 노력하였다.

 

화공은 옛날의 신분이었다면 진사 따위에 대해 굽실거릴 만큼 초라하게 대할 이유가 없었겠지만 가문이 역모로 몰린 지금 모두가 지난 일, 지금은 천한 쟁이의 신분이었다.

 

화공은 너무 과다한 술은 일부러 술이 몸에 맞지 않는다고 말하여 사양하였다.

 

그것은 술을 마시고 즐기는 것으로 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술을 마시면서도 그의 마음은 콩밭에 가 있었다.

 

화공은 술자리를 마치고 행랑으로 돌아왔다.

 

그는 곰쇠를 시켜 옥이에게 서신을 전하게 하였다.

 

그 서신의 내용이란 오늘밤 자시에 장독대 너머 담 밖에서 기다리겠다는 것이었다.

 

자시쯤 되어 화공은 먼저 장독대에 올라서서 밖을 내려다 보았다.

 

화공이 담장밑으로 옥이를 안아 내릴 때 서로는 꿈결같이 향긋하게 느껴지는 감미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집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성황당으로 찾아가서 밤이 새도록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있었다.

 

화공의 부친은 판서였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사화가 발생하여 하루 아침에 역모로 몰려 죽게 되었고 그의 어머니도 그 때문에 병을 얻어 죽고 말았다.

 

역모의 가문으로 내동댕이쳐진 그의 가문은 천민으로 전락하는 콩가루 집안이 되어버렸다.

 

이에 그는 전국을 바람처럼 구름처럼 떠돌던 중 높은 스승을 만나 그림을 공부하게 되었다.

 

그림공부를 마친 화공은 여기 저기를 떠돌며 초상화를 그려주거나 그림을 그려서 술을 사 마시고 밥을 사 먹었다.

 

그렇게 하던 중에 이 곳까지 이르러 옥이를 만나게 되었다.

 

화공은 옥이를 본 순간부터 저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일어났다.

 

그대를 처음 볼 적에 선녀도 그대만큼 아름다울 수 없다고 생각하였소.

 

운명의 힘을 느꼈소. 그리고 세상에 태어나 낭자의 모습을 그릴 수 없다면 얼마나 불행할 것인가 생각하였소이다.

 

내가 낭자에게 그림을 건네주었소만 그 그림은 그림이라기보다는 내 마음을 전해준 것뿐이오. 앞으로 시간을 갖고 낭자의 모습을 그릴 수 있기를 원하고 있소

 

너무 과찬의 말씀입니다. 소녀는 그렇게 빼어난 것이 없습니다

 

아니오, 낭자 난 낭자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내 진심이 드러나기를 원하오. 낭자 우리는 신분이 맞지 않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낭자를 사랑하고 있소. 내 마음을 받아주오. 나와 혼약하길 바라오

 

옥이는 화공의 청을 받아주었다.

 

있을 수 없는 일, 있어서는 안될 일이었지만 옥이는 화공없이 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옥이의 마음을 부모님께서 진정으로 알아준다면 허락해 주시리라 생각하였다.

 

낭자 우리가 어떤 일이 있어도 세상 끝날때까지 함께 한다는 징표로 그대의 머리에 비녀를 꽂아주고 싶소, 내 어머니께서 남긴 유품인데 내가 사랑하는 여인에게 바치려고 몸에 간직해 왔었소

 

화공은 옥이의 머리를 풀어 다시 비녀를 꽂아주었다. 여필종부의 한 예식이기도 한 머리올림이었다.

 

두 사람은 어떤 어려운 일이 닥치더라도 함께하길 약조하며 집안 식솔들이 깨기전에 다시 담을 넘어와 각기 방으로 들어갔다.

 

오는 밤 자시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화공은 조반을 먹고 다시 김진사의 초상화를 그렸다.

 

그러나 이날도 일부러 완성하지 않고 다음 날로 미루었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진사의 부인이 옥이의 방에서 옥이가 그네타는 모습의 그림을 발견하게 되었다.

 

부인은 그 그림이 틀림없이 화공이 그린게 확실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렇다면 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부인은 호들갑스럽게 이 사실을 김진사에게 알렸다.

 

김진사는 하인들을 모두 모아 화공의 두 손발을 묶고 광에 가두라고 하였다.

 

광에 가두고 입에 재갈을 물리고 요절을 내라고 하였다.

 

살기에 찬 진사의 명령에 하인들은 화공을 두들겨팼다.

 

재갈 물린 입에서 고통의 신음소리가 흘러나왔지만 피투성이가 다 되도록 두들겨팼다.

 

화공은 불행하게도 두 번 다시 깨어나지 못하고 참말로 요절하게 되었다.

 

화공이 요절하자 옥이는 몇 날 며칠을 울고 또 울었다.

 

그러나 님을 잃은 슬픔을 달랠 수가 없었다.

 

옥이는 끝내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괴로워하다가 실신을 하게 되었다.

 

김진사와 그의 아내는 딸을 치료하려고 백방으로 애를 썼지만 불가능한것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옥이의 병은 점점 깊어져 화공의 이름을 부르며 몸부림치다가 능경마을 남쪽 벼랑에 이르게 되었다.

옥이는 바위 위에 사랑의 징표인 비녀를 남겨두고 밑의 소에 빠져 죽었다.


이렇게 하여 그 바위는 비네바위라 불리게 되었고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칠월 칠석이 되면 비네바위가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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